[사설]학운위가 만만한 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서울 영등포구 A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학부모 및 지역위원 7명 전원이 “교장의 돈 요구와 형식적인 학운위 운영, 성희롱 막말에 견딜 수 없다”면서 사퇴했다. 이들이 서울시교육청에 낸 진정서에 따르면 김모 교장은 학운위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수백만 원씩이 드는 시계탑과 교훈석을 교내에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교사들과 상견례 명목으로 학운위 위원들에게 1인당 150만 원씩 출장 뷔페 비용을 씌웠다. 김 교장은 학운위 동의 없이 수백만 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빼내 교사들의 운동복 구입이나 술 마시는 데 썼다고 한다. 교장이 학운위와 위원들을 봉으로 취급한 처사다.

김 교장의 성희롱 발언은 교육자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그는 여성 학부모 위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여자가 없으면 술을 안 마신다” “여름엔 젊은 엄마들이 좀 벗어줘야 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자회에서 젓갈을 맛보라고 권하는 학부모에게는 “나는 그 젓보다 다른 젓이 더 좋은데”라고 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요즘 세상엔 교직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도 여성에게 이런 말을 했다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교장은 교육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책임감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교장들의 비리와 일탈이 터져 나오는 것은 우리 교육계의 수치다. 자질 미달의 교장들이 아직도 교육현장에 많이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를 학교에 맡겨놓은 학부모들은 교장의 비리를 알고도 자녀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우려해 묵인하기도 한다.

비리 교장을 퇴출시키지 않고는 교육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 올해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 교장평가제는 보수 및 인사와 연계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 교장평가제가 요식 행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이 임명하든 아니면 공모제를 통해 뽑든 교장 선임 단계에서부터 자질과 도덕성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삼아야 한다.

초중등학교법에 근거한 학운위는 학부모와 교사, 지역사회 인사가 참여해 학교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심의(국공립학교) 또는 자문기구(사립학교)다. 그러나 독립성과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번 A초교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당연직 교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다. A초교처럼 교장에게 휘둘리는 학운위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학운위가 실질적으로 학교의 자치기구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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