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병기]신한銀 차명계좌 조사하고도 몰랐다?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12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금감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정황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묵인했는지를 놓고 한바탕 진실 공방이 일었다.

지난해 5월 신한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담당했던 팀장은 “(라 회장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담당 국장과 본부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를 총괄했던 담당 본부장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정황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고성과 호통 속에 30여 분간 계속되던 진실 공방은 담당 본부장의 말 바꾸기로 끝이 났다. 의원들이 당시 검사를 담당했던 국장과 팀장을 계속 추궁하자 담당 본부장이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관련 검사는 검찰에서 수사 중이어서 더는 진행할 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발언을 번복했다.

금감원의 해명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긴 했지만 금융실명제법 위반 정황은 몰랐다’는 논리였다. 이는 몇 년 전 음주운전 사고를 낸 한 연예인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해명만큼이나 해괴한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해 5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이전부터 금감원이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 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됐다. 차명계좌를 통해 자금이 거래됐다면 당연히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뒤따른다. 금감원이 지난해 5월 종합검사에서 라 회장의 차명거래와 관련된 신한은행 직원 20여 명을 직접 조사하면서 질의서까지 보낸 것은 이미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을 갖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올해 초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이 내사 종결한 사안’이라거나 ‘검찰의 자료 협조 없이 자체 조사를 하기 어렵다’고 설명해왔다. 이런 태도가 금감원이 정치적인 외압에 휩쓸려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을 묵인했다는 의혹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설령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정황을 몰랐다고 해도 금감원은 신한금융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 금융실명제법과 금융질서 문란행위를 감독하고 제재하는 것이 금감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과론이지만 지난해 5월 당시 검사가 철저하게 이뤄졌다면 신한 사태의 불씨는 진작 진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병기 경제부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