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동원]누가 우리 노사관계를 최악이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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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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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WEF)의 9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사 간 협력 정도가 평가 대상 139개 국가 중 138등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노사관계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해외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가 매년 국내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외국의 언론에서도 한국을 ‘죽을 때까지 파업하는(Strike to Death)’ 나라로 묘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의 노사관계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희박하다.

우선 해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해외 평가기관에서 평가한 각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매년 뚜렷한 이유 없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5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58개국 가운데 전년보다 4계단 상승하여 역대 최고인 23위를 차지한 반면 WEF의 이번 평가에서는 국가경쟁력지수가 3년 연속 하락해 2007년의 11위에서 올해는 22위로 떨어졌다. 두 기관은 같은 시기에 한국을 평가했는데 평가 결과는 상반됐다. IMD가 통계를 많이 사용하고 WEF는 설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들의 국가경쟁력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현상은 평가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조사 방법에도 문제가 많다. WEF 설문은 KAIST 경영대학원 재학생 및 졸업생 3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런데 설문 회수율이 4.1%에 불과하다. 응답자 130여 명은 한 국가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적다. WEF의 노사협력 평가는 한국 기업주를 상대로 하여 노사 간 협력하는 정도가 높은지 낮은지에 대한 하나의 문항 결과로 판정한다. 노사 관계의 당사자가 노사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사용자의 주관적 노사관계 만족도를 국가 노사관계 경쟁력 지표로 매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사협력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사용한 학술적 평가는 위 기관에서 사용한 주관적인 평가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보인다. 작년 미국 일본 한국의 3개국 노사관계 학자들이 공동으로 한국의 노사관계를 평가했는데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 파업 증가율, 파업 참가자 증가율 등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수집한 객관적 통계수치로 비교하면 한국의 노사갈등지수는 OECD 30개 회원국 중 중위권인 14위로 나타난다. 즉, 객관적인 지표로 본 한국의 노사갈등 정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 아닌 중위권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노사관계를 평가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대회에 참석한 외국의 학자들이 IMD나 WEF가 어떤 단체인지를 물어왔을 때 느낀 황당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이들 기관의 평가 결과를 매년 올림픽 메달 순위처럼 언론에서 부문별로 대서특필하고 정부 당국자가 상승과 하락 원인을 설명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해외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는 아직은 신뢰성이 낮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매년의 평가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부족하다고 지적된 점을 다시 한번 되살펴 보는 계기로 삼으면 충분할 것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은 국가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릇된 여론을 형성하게 하여 잘못된 정책방향을 유도할 수 있다. 차제에 국가의 노사관계 경쟁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준을 새롭게 만들고, 주관적 또는 객관적 지표를 종합한 과학적인 평가에 기반하여 노사관계의 핵심 과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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