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정석훈]인류와 세균의 전쟁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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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레밍 경은 푸른곰팡이가 페니실린이라는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현상을 1928년 발견했다. 세균 감염증의 치료 수단이 없었던 인류에게 항생제라는 신의 축복을 안겨주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페니실린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세균인 황색포도상구균, 폐렴구균 등 그람양성구균 감염증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플레밍 경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페니실린에 내성인 세균이 등장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화됐다. 페니실린에 내성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곧 등장했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이후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여 감염증을 치료하려는 인류와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여 생존하려는 세균 간의 전쟁이 지금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다. 세균은 인류가 만들어 낸 항생제에 내성을 갖춰 맞서고 인류는 내성을 가진 세균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항생제를 만들어 반격을 하는 방식이다.

페니실린에 내성인 황색포도상구균은 메티실린 제제가 개발되면서 치료의 길이 열렸다. 메티실린에도 내성인 세균에는 반코마이신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한 세균이 출현했고 인류는 다시 신약을 개발해 탈출구를 열었다. 이들 치료제로 효과를 볼 수 없었던 그람음성세균은 카바페넴으로 대응했다. 카바페넴을 대체할 수 있는 항생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이 항생제는 그람음성세균 치료에선 마지노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인류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세균의 전쟁이라면 당연히 사람이 승자가 될 것 같지만 작금의 사태는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균은 사람이 개발한 항생제에 다양한 기전을 통하여 내성을 획득한다. 심지어는 최강의 항생제인 카바페넴 내성을 획득한 슈퍼박테리아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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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항생제 개발에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하지만 일단 항생제가 임상에 사용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내성세균이 발견되곤 한다. 그동안 다양한 항생제를 개발했기 때문에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제약회사 쪽에서는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 치료제보다 급성질환 치료에만 사용되는 항생제가 매력적인 수입원이 아니라는 점도 항생제의 개발이 잘 이뤄지지 않는 하나의 원인이다.

슈퍼박테리아의 확산은 우리에게 후(後) 항생제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전(前) 항생제 시대에는 항생제가 없어서 감염증을 치료할 수 없었지만 후 항생제 시대에는 세균이 모든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해서 항생제 치료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균의 항생제 내성률이 외국보다 더 높은 한국은 이런 위협에 훨씬 많이 노출돼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에 의한 집단감염이 중환자실에서 발생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건 당국은 이와 같은 사례가 한국에서 보고된 바 없다고 하지만 이 슈퍼박테리아의 비율이 50% 이상으로 일본의 5% 이하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우리나라에서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후 항생제 시대의 도래를 늦추기 위해선 슈퍼박테리아의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실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하며 슈퍼박테리아 감염증의 표준치료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또 병원에서는 감염관리를 강화하고 의사는 항생제를 오남용 없이 적재적소에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생제를 치료 이외의 목적, 예를 들어 동물의 성장촉진제로 사용하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의사와 수의사를 제외한 비전문 인력이 항생제를 임의로 사용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슈퍼박테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될 날을 기다린다.

정석훈 연세대 의대 교수 진단검사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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