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이 생명인 공무원 특별채용제도에서 고위직 자녀들을 배려하는 특혜는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 이후 한나라당이 특채 비율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행정고시 개편안에 제동을 건 것도 성난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특채제도에서 꼭 필요한 특혜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그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기능직 공무원 채용 시 정원의 1%를 저소득층 자녀에게 할애하겠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자녀 1% 채용 룰’을 만든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 실적은 어떨까.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9일 행정안전부에 의뢰해 ‘2009년 저소득층 기능직 공무원 채용현황’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다. 43개 정부부처(외청 포함) 중 20개 부처가 기능직 공무원을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인원은 모두 439명. ‘1% 룰’에 따르면 최소 4명은 저소득층 자녀여야 했다. 하지만 실제 채용된 저소득층 자녀는 단 한 명뿐이었다.
특히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산하 기관에서 모두 222명의 기능직 공무원을 채용했지만 저소득층 자녀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 9명을 뽑으면서 저소득층 자녀를 1명 채용한 병무청과는 대비된다. 저소득층 자녀의 채용 규정을 지키지 않은 지경부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경부가 한 번에 222명을 뽑은 게 아니라 기관별로 조금씩 나눠서 뽑다 보니 이 조항을 지키지 못했다”며 “올해는 꼭 저소득층 자녀를 뽑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 조항이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인지 물었다. 행안부 담당자는 “의무사항이지만 처벌조항은 없다”고만 말했다.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저소득층 자녀의 공직 진출 기회를 늘리기 위해 ‘1% 룰’을 만들었다. 모든 부처가 반드시 지키도록 행안부에서 ‘균형인사지침’도 마련했다. 하지만 기능직 공무원은 한 번에 많은 수를 뽑지 않아서 실제 이 룰을 적용하기 힘들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도 없다. 그래서 이 룰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지만 각 기관을 독려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배경보다 능력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 도입에 앞서 지금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공정한 사회’가 희화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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