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승]체벌과 교육의 간극 없애려면

동아일보 입력 2010-09-07 03:00수정 2010-09-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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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학생은 학창시절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체벌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 세상의 지식과 규범, 지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인 10대. 실수가 너그러이 용납되고 무지와 잘못이 당연하게 간주되어야 할 그들에게 학교가 체벌을 통해 교육하려는 일은 학교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체벌이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체벌교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교사의 인격미달과 체벌권 남용으로 애들을 개 패듯이 패는 폭력교사형이다. 주로 학내 질서유지를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학교마다 학년마다 대개 한두 명은 있어서, 우리의 기억 속에도 선명히 각인돼 있다.

폭력교사에게는 법적인 처벌이 필요하다. 물론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런 폭력 교사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범대의 존재이유를 의심하게 만든다. 교사는 교육학을 제대로 배워야만 자격을 얻는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사범대에서 교육방법론에 대한 현실적인 교육, 아니 최소한 체벌 없이 수업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사적 폭력을 행하는, 욱하는 체벌교사형이다. 본래 학생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미성숙하다. 그러다 보니 교사를 정당하게 열 받게 만드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교사는 참지 못하고 매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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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든 체벌 정당화 안되지만

일례로, 필자는 중학교 때 천사 같은 미소의 과학 선생님이 의자를 집어던지면서까지 학생을 때리는 걸 본 적이 있다. 학생이 다리를 저시는 선생님에게 병신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도 때리는 선생님 편이었다. 하지만 같은 친구가 보기에도 맞아도 싼 학생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성숙한 교사의 태도다.

학생의 비인격적이고 미성숙한 태도는 어디서 교정해야 할까? 사실은 가정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가정교육, 보육과 훈육이 학교의 영역에까지 들어와 있으니, 교사가 부모처럼 학생을 때리는 것이 묵인된다. ‘사랑의 매’란 이름으로 학교에서의 체벌이 묵인되는 이유는 가정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내가 낳은 애, 내 맘대로 때리는데 누가 뭐라나?”라며 가정에서 아이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는 한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라도 체벌은 반대지만, 만약 사랑의 매가 꼭 필요하다면 학부모가 정한 방식으로 체벌하는 것이 대안이다. 체벌을 허용하는 상황과 형태를 학부모, 교사, 학생이 함께 정한다면 부적절한 방식의 체벌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이다. 대부분의 교사가 여기에 해당될 텐데, 플라스틱 자나 나무 회초리로 학생을 가볍게 톡톡 때리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진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언어폭력으로 수업시간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경계선 체벌교사형이 있다. “너희들, 지금은 이렇게 히히거리며 웃지? 이러면 나중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줄 아느냐?”면서 아이들이 떠들거나 숙제를 안 해올 때마다 으름장을 놓는 교사가 여기에 속한다. 언어폭력 또한 폭력이며, 자나 회초리로 때려도 체벌은 체벌이다.

대부분의 교사가 경계선 체벌교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사가 정당히 수업을 통제할 권한이 원천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해오기로 한 숙제를 안 해와도, 잠을 자거나 결석을 해 수업에 무관심해도, 떠들거나 교사를 무시함으로써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지킬 방도가 없다.

그러면서 교사는 자율적으로 선택해 돈까지 내며 듣기에 동기부여가 충만한 사교육 수업과 비교되며 무능한 지식전달자로 폄하된다. 과연 교사는 어떤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수업권을 지켜내고 성실한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

교사에 수업통제권 부여가 먼저

물리적인 폭력을 포함해 언어폭력, 학생인격모독 등 체벌을 학교에서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학점이수제와 같이 교사에게 정당한 방식으로 수업을 통제할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성실히 수업에 참여한 학생과 불성실한 학생이 때가 되면 함께 수업이수를 하는 제도는 정의롭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학생이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수업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체벌은 일시적으로 학생을 통제할 순 있지만 그들을 교육할 순 없다. 모든 교사가 인격적인 카리스마와 잘 준비된 강의로 집중력 높은 수업을 이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수업 장악은 이제 교사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교육제도가 부여한 정당한 통제권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현실은 저 멀리에 있지만.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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