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리 법조인 ‘몰래 사면’하고 ‘공정한 사회’ 말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특별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제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 등에 대한 8·15 특사는 그들의 범법행위 내용은 물론이고 아직도 국민의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었다. 정부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법치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사면을 강행했다.

국민의 시선이 노건평 서청원 씨 같은 유명인사에 쏠려 있는 사이에 법무부는 사면 대상에 판검사 및 변호사로 재직 중 법조비리에 연루됐던 법조인 8명을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사면을 받은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조브로커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인물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모든 법관과 더불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다”며 사죄한 것이 불과 4년 전이다. 법조비리 전력자 대부분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권(復權)돼 변호사 활동의 법적 제한이 완전히 풀렸다. 역시 가재는 게 편이다.

법무부는 법조인 사면 사실을 8·15 특사 대상자 발표 때 숨겼다. 사면심사위원회가 대상자 2493명 가운데 107명의 인적사항을 공개키로 의결했는데도 법조인 8명을 비롯한 29명을 법무부가 제외했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견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그 위원회를 바지저고리로 만든 속임수였다. 사면심사위의 의결도 무시하려면 뭣하러 예산 낭비하며 그런 위원회를 만드는 것인가.

법무부는 “취재 편의를 위해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저명인사 위주로 명단을 넣다 보니 전원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거짓말이다. 차관급이었던 조 전 고법 부장판사와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낸 이원형 변호사는 물론이고 3명의 부장검사와 1명의 부장판사는 어느 모로 보나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할 고위공직자였다.

정부는 8·15 특사를 하면서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국민을 경시하는 레토릭(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사회통합과 국민화합을 해치는 특별사면이었다. 정치권과 법조계, 대기업과 연관된 특권층에 법의 원칙에 어긋난 특혜를 주는 것이 이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인가.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범법행위를 저지른 특권층이 특혜를 받은 ‘특권 공화국’에서 법치주의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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