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호열]새로운 통일담론 물꼬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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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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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남북관계는 혼돈 그 자체이다.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답답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5주년을 기념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새 패러다임은 대결과 정체가 아닌 공존과 발전이며 분단 상황의 관리에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아직 햇볕정책의 그늘 못벗어나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란 명저에서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 이론 등 총체적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였다. 패러다임은 생성 발전 쇠퇴 소멸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남북관계는 패러다임 교체를 거듭했다. 냉전기의 패러다임은 증오와 반목, 단절과 대결이었다. 탈냉전기에는 화해와 협력이 새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절정을 장식하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발의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 시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대표적 인식 구조이자 이론틀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의 기치 아래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기본적으로 화해 협력을 바탕으로 한 기능적, 단계적 접근을 통한 분단 관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했지만 국민의 인식 및 북한과 주변국의 반응은 햇볕정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의 대응 역시 역사적 소명의식보다는 비핵화 우선이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의 차별화에만 급급하였다. 상생공영정책, 행복공동체, 한반도 신평화구상, 그랜드바겐, 3대 공동체 통일방안이 줄줄이 양산되는 원인이기도 하였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80% 정도는 통일을 위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 인권이 개선되어야 하며 북한의 개혁 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응답함으로써 정부 정책의 기본 원칙에 찬성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60% 정도가 불만족하다고 답변함으로써 대북정책의 새로운 접근을 촉구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60% 정도만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20%에 이르는 국민은 통일 자체에 대해 불가능하다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보였다. 민주평통의 여론조사에서는 통일을 찬성하는 국민 중에서 절반 정도가 통일비용을 부담할 의향이 없으며 실제 통일독일에서 부과하는 정도의 통일세를 부담할 의사가 있는 국민은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 의식의 이중성과 비현실성은 포용정책이나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기반한 현재의 남북관계 패러다임이 더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이를 둘러싼 아노미적 갈등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위해 불가결한 현상이다. 지엽적이고 가상적인 통일세를 둘러싼 정치적 공박이나 선 남북관계 개선 등 햇볕정책으로의 회귀 주장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없다.

통일방식 등 사회적 합의 마련해야

역설적이지만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역량 없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파할 수 없다. 남북관계나 통일에 대한 공감대와 통일 방식과 대책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두어야 패러다임의 교체를 이룰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주목하면서 주변국의 냉철한 자국이기주의와 변화를 거부하고 핵무기에 집착하면서 세습왕조 체제 구축에 열을 올리는 북한을 제압할 수 있는 혁명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통일의 원대한 비전과 이를 달성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포함한 통일 대전략을 수립하기 위하여 진지하고 의미 있는 통일담론의 형성을 기대하면서 늦었지만 집권 후반기 정부의 비상한 각오와 노력을 촉구한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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