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훈]국가정보원의 퇴행 기능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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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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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국가정보원 요원이 ‘기피 인물’로 추방돼 한국과 리비아 사이에 외교 갈등이 빚어졌다. 그 요원은 국정원 소속이라는 사실이 리비아 정부에 통보된 ‘백색 요원’이었다. 백색 요원은 그 나라 정보기관과 ‘테이블 밑’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외교관들이 접근 못하는 중요 정보를 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요원은 리비아 정보 당국이 주고 싶지 않은 정보를 구하려다 적발됐다. 리비아 정부가 금하는 공작 활동을 한 것이다. 그의 활동은 1998년 주러시아 대사관에 참사로 근무하던 안기부(현 국정원) 요원이 러시아 외교부의 아시아태평양국 부국장을 매수해 정보를 입수한 혐의로 추방된 사태와 흡사하다. 12년 만의 백색 요원 추방 사태를 보며 지난 10여 년 동안 퇴행(退行)했던 국정원의 해외 활동이 다시 살아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처리가 서툴러 상대국에 노출된 것을 칭찬할 수는 없지만 10여 년 동안 등한히 하던 일을 하다 보니 아직 완전히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다.

‘흑색 요원’은 상대국에 알리지 않고 침투해 공작한다. 1999년 중국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한 국내 기업의 선양(瀋陽) 지점장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추방한 적이 있었다. 이 지점장의 정체는 국정원 흑색 요원이었다. 그는 안기부에 들어감과 동시에 민간기업에 입사해 두 직업을 병행했다. 신분 세탁이다. 그는 선양에서 대북공작을 지휘하다 낌새를 챈 북한 공작 조직이 제보해 중국 정보기관에 검거됐다.

지난 10여 년은 국정원장이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국정원의 통일부화’ 시기였다. 연성화한 국정원 덕분에 남쪽에 잠입한 간첩들은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 국정원은 그러지 않았다. 5, 6년 전 필자는 일본 정부로부터 아시아 주요 국가정보기관 활동 조사 용역을 받았다는 일본 도쿄공대 교수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의 질문이 끝나갈 무렵 거꾸로 “왜 한국 국정원을 조사하게 됐느냐”고 물어봤다.

“안기부(국정원)는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 씨와 노동당 비서인 황장엽 씨의 망명에 개입해 북한 정권 핵심부를 뒤흔드는 공작을 성공시키지 않았나. 지금은 남북관계가 유화 국면이어서 멈춰 섰지만 국정원의 실력은 북한 정보기관,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라고 본다. 일본이 국가정보기관을 만든다면 한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활동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후 국내 방첩활동도 활발해진 것이 감지된다. 그리고 ‘반작용’으로 국정원이 정치사찰을 한다는 시비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여 년은 국정원이 정치사찰 문제로 발목이 잡혀 국외 활동이 위축된 시기이기도 했다. 국가대표가 뛸 무대는 월드컵이지 K리그가 아니다. 유일한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국내 활동은 자제하고 국외 활동에 더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적 억제를 천명하자 북한이 전면적 체제 대결을 선포했다. 남북한이 치열한 기 싸움 단계로 들어간 상황에서 북의 급변사태나 천안함 같은 도발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무명(無名)의 헌신’을 강조하는 국정원이 대북 및 해외 활동을 기민하게 펼쳐 안보를 튼튼히 해줘야 국민에게 인정받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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