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초인(超人)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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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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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의 끝 모를 추락이 화제다. 지난주 끝난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웨지샷을 연못에 빠뜨리는가 하면 냉탕 온탕(어프로치를 잘못해 그린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뒤땅 등 주말 골퍼가 하는 실수를 모두 보여줬다. 스코어는 나흘 내내 오버파. 갤러리를 맞히는 티샷이 나오자 정중하게 머리 숙이고 사인을 한 장갑까지 건넨 그를 두고 한 외신은 “우즈가 박수를 받은 것은 굿샷이 아닌 미스샷 덕분이었다”고 비꼬았다. 해외 베팅업체들은 이번 주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 우승 후보로 필 미켈슨을 맨 윗자리에 올려놓았다. 우즈가 21세기 들어 메이저대회 우승 배당률에서 2위로 밀려나기는 처음이라고 흥분하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람들이 우즈의 슬럼프에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섹스 스캔들로 인한 갑작스러운 몰락도 안줏거리는 되겠지만 그동안 그가 이룬 업적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황제 칭호조차 모자라 외계인이란 별명까지 얻은 그가 아닌가.

국내 스포츠도 파이를 키우려면 슈퍼스타의 탄생이 필요하다. 그냥 영웅이 아니라 우즈 같은 초인(超人) 말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을 놓고 누가 나은지 설전을 벌이던 1980년대는 정말 행복했다. 하루 지난 뒤 전해지는 올드뉴스이긴 해도 차범근이 당시 최고 명문이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은 것은 국민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1990년대 들어선 박찬호가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미국 메이저리그 정복에 나섰다. 드라이브 장타와 정교한 아이언샷을 겸비한 박세리는 맨발 투혼을 불살랐다. 2000년대엔 김연아와 박태환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피겨와 수영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들은 비록 우즈급은 아니지만 동양인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프로야구는 올 들어 한화 류현진과 롯데 이대호 홍성흔 등이 왕년의 최동원 선동열 이만수 이승엽에 맞먹는 활약을 펼친 데 힘입어 월드컵 악재를 딛고 사상 첫 600만 관중 동원을 향해 순항 중이다. 류현진은 세계 야구사에 유례가 없는 전 경기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던져 3자책 이하 투구)에 도전하고 있다. 이대호와 홍성흔은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왕 동시 등극)을 놓고 집안 경쟁 중이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겸비해야 하는 타격 트리플 크라운은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 탈삼진)과 달리 대단히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다. 메이저리그에선 1967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축구계도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 쾌거와 여자축구 지소연의 스타 탄생으로 경사를 맞았다.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으로 이어지는 양박쌍용의 활약은 한국축구를 기름지게 할 자양분이다.

문제는 꾸준함이다. 정상에 오르기보다 정상을 지키는 일이 훨씬 힘들고 중요하다. 팬들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롱런하는 스타에게 열광한다. 물론 우즈 정도 되면 부진이 더욱 뉴스가 되기도 한다. 우즈 없는 골프계는 끔찍할 정도로 밋밋해 보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스포츠는 민주화에 역행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괜한 태클 걸지 말고 재미로 들으시라. “민주화(보통 선수들의 시대)가 되니 여러분 살림살이(스포츠 보는 재미) 좀 나아졌습니까. 독재자(초인)가 장기집권(1인 독주)하던 때가 그립지 않습니까.”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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