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외국인 감독 문제점’ 지적하다 곤욕치른 許감독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57)은 20일 때 아닌 곤욕을 치렀다.

17일 발간된 신동아 8월호는 ‘지장 허정무, 히딩크가 한국 축구 말아먹었다’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인용한 다른 언론의 보도가 웹 포털사이트에 오르면서 허 감독을 비난하는 누리꾼의 글이 쇄도했다.

신동아는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짠 게 있나요? 그는 철저하게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모든 전략과 전술을 2002년에만 맞췄으니까요. 2002년 이후를 내다보는 세대교체, 특히 취약한 수비 부문의 세대교체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습니다”라는 허 감독의 말을 전했다. 허 감독은 이어 “히딩크의 뒤를 이은 코엘류, 본프레러, 베어벡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코앞의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했지 밑바닥에서부터 유망주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사람들이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지적했다.

13일 신동아와 함께 취재했던 기자도 허 감독으로부터 같은 얘기를 들었고 이 인터뷰를 동아일보 17일자 A20면에 실었다. 차이가 있다면 신동아는 녹취된 허 감독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게 허 감독의 취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인터넷을 달군 논란의 초점은 ‘허 감독이 히딩크 감독을 대놓고 비난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당시 허 감독은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외국인 감독을 기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동안 거쳐 간 외국인 감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허 감독은 21일 통화에서도 “월드컵 4강을 이룬 히딩크 감독의 업적은 인정해야 하고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 역시 세대교체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당시 대표팀의 주축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에 남긴 히딩크 감독의 발자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허 감독의 지적대로 대표팀 감독이라면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어야 한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허 감독에 대한 비난이 주류다. 하지만 “기사를 잘 읽어보면 허 감독의 뜻을 알 수 있을 텐데”라는 반응도 많았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