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헌절 맞기가 부끄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7일 03시 00분


자유와 평등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회의 균등, 군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등은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던 대한민국은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급속한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 보호, 형사 피의자 및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등 기본적 인권이 크게 신장됐다. 그럼에도 오늘 제62주년 제헌절을 맞아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연륜을 더해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반(反)헌법적 행태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의 고문의혹 사건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보여주었듯이 인권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헌법 제7조)을 짓밟는 집단행동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 민주노동당 같은 일부 정당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돼선 안 된다’는 헌법 제8조를 수시로 위반하며 헌법정신을 흔들고 있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 실태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남한 내 인권 문제만을 과도하게 제기하는 일부 좌파 단체의 친북(親北) 종북(從北) 행태도 헌법정신을 거스르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와 교육 분야에서도 헌법의 ‘기회의 균등’ 정신을 ‘기계적 평등’으로 왜곡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성적에 따른 우열반 편성이나 영재교육, 특수목적고 등이 마치 평등 이념에 배치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그런 사례들이다. 잘못된 평등 의식이 국가 백년대계와 교육 경쟁력 향상을 가로막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권리인 양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집회시위의 자유도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대다수 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설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개정시한(올해 6월 30일)을 넘겨 우리 사회를 야간집회 천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뿌리요 뼈대다. 법을 집행하는 대통령과 정부부터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앞으로 국가공무원을 임용할 때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받도록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국회도 입법 과정에서부터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지켜 불법국회, 폭력국회의 오명을 씻어야 한다. 사법부 역시 판사들의 주관적 소신이나 특정 이념에 기울지 않는 판결, 헌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을 통해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다. 나라의 근간인 헌법정신을 지키는 궁극적인 책임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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