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범]연예인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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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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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과 현대물을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던 연기자 최철호가 지난 일요일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경기 용인의 술자리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부인했던 거짓말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출연 중인 MBC 드라마 ‘동이’에서 물러났다.

얼굴 보이자마자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인기를 얻는 성공 신화가 흔한 요즘, 최철호는 그 반대인 대기만성의 스타였다. 그는 1990년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했지만 긴 시간 무명으로 지내다 2002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신마적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드라마 ‘내조의 여왕’과 ‘천추태후’에서 맡은 캐릭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불혹의 나이에 ‘꽃중년’의 대표주자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그는 이제 20여 년 연기인생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눈물의 기자회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무척 싸늘하다.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도 잘못이지만 자신의 행동을 숨기려고 한 거짓말이 더 문제라는 여론이 많다.

최철호는 술자리 폭행 파문이 알려진 이후 소속사를 통하거나, 본인이 나서 “전혀 그녀를 때리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피해자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SBS 뉴스를 통해 당시 상황을 찍은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고, 경찰 지구대에서 그가 한 행동까지 알려지면서 거짓말이 탄로 났다. 최철호는 기자회견에서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지난해 어렵게 얻은 인기가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인기는 연예인에겐 가장 중요한 활동 목적이다. 많은 연예인은 인기를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사람이 기억하는 인지도를 통해 확인하려 한다. 가수가 토크쇼에 나와 개인기나 화려한 말솜씨를 자랑하고, 연기자가 버라이어티쇼에서 코미디언 못지않은 익살을 부리는 것도 자신의 존재를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즉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이렇게 해서 높인 인지도가 나중에 높은 모델료의 CF계약이나 행사출연 같은 경제적 보상으로 돌아오니 뭐라 탓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인기에는 인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그가 간과하지 않았나라는 점이다. 바로 스타의 말과 행동에 대한 대중의 신뢰이다. 안성기에게 국민배우란 애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연기를 오래 했거나, 흥행성이 높은 스타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긴 세월 동안 연기는 물론이고 활발한 사회활동과 사생활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에 대해 대중의 믿음이 두텁기 때문이다.

스타에 대한 신뢰는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을 때,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이득에 걸맞은 도덕성을 보여줄 때 자연스레 생겨난다.

1988년 미국 팝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밀리 바닐리란 듀오가 있다. 6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에 그래미상 신인상까지 수상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남이 부른 노래에 입만 맞춘 ‘립싱크’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인기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후 팀 이름을 바꾸어 음반을 내는 등 여러 번 재기를 시도했지만 대중은 철저히 외면했다.

보다 빨리, 보다 많이 자신을 알리는 데만 몰두하는, 또 그렇게 얻는 인지도를 인기의 모든 것으로 아는 스타지망생과 기획사에 최철호 파문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재범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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