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대국 비위 맞추기 외교로 국익 지킬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3일 03시 00분


북한의 천안함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 서해 연합훈련을 추진하던 정부가 중국의 반대에 부닥쳐 주춤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외교가 이렇게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하니 중국이 우리를 더욱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수십만 북한 동포들의 운명이 걸린 재중(在中) 탈북자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는 중국의 처분에 내맡기다시피 한다. 대만 관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방한 문제도 지나치게 저자세로 다루고 있다. 청와대나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강대국을 상대할 때 1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국익인지, 보신(保身)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국군포로 A 씨(84)는 60년 만에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 선양의 우리 공관에 6개월째 발이 묶여 있다. 중국의 탈북자 홀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한중 우의(友誼) 차원에서나 인도적 차원에서나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는 게 우리 대중(對中) 외교의 현주소다. 정부의 달라이 라마 방한 거부는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달 일본을 14번째 방문했다. 그는 올 2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만났다.

한국의 대만 홀대는 한심한 수준이다. 6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세계 및 아태 자유민주연맹 총회에 이명박 대통령의 참석이 추진됐지만 영상 메시지로 대체됐다. 대만이 대표를 보낸 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하면 중국이 불편하게 여길 것이라는 고려에서였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달 대만과 자유무역협정 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한국이 대만과의 접촉을 제한하는 사이 중국과 대만은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한미 관계에서도 당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정부는 지난주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을 불러 조심하라는 경고를 했다. 정부의 움직임에 놀란 국내 은행이 이란 원유 수입대금을 결제하지 못하겠다고 나서 소동이 벌어졌다.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 주도의 국제적 노력에 동참해야 하겠지만 제재와 관계없는 경제교류까지 포기하면 어떻게 국익을 지키겠는가. 동맹국 미국에도 할 말은 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우리는 천안함 사태를 남북관계라는 좁은 관점에서 보지만 미국과 중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주무른다. 강대국 비위 맞추기 외교를 계속하다 보면 자칫 강국들이 설계하는 세계전략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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