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남국]월드컵과 진정성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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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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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광고가 어떤 기업의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유사하다.”

최근까지 TV에 범람했던 월드컵 광고에 대해 한 전문가는 이런 평가를 했다. 실제 이번 남아공 월드컵 기간 중 많은 기업들은 빨간색이 가득한 응원단 영상이나 축구 스타의 경기 장면 등을 활용해 광고를 내보냈다. 내용도 ‘대표팀을 응원하자’거나 ‘2002년처럼 통합된 힘을 보여주자’는 등 획일적인 메시지를 반복했다.

기업들이 월드컵 마케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지만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차별화된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한 사례는 드물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마케팅 담당자들의 창의성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축구라는 제한된 소재를 활용했기 때문에 중복이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마케팅에서 많은 기업들이 간과한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현대 경영의 화두로 등장한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진정성은 ‘믿음’과 ‘신뢰’를 의미한다. 겉으로 ‘고객 우선’을 내세우면서 콜센터에 전화해 상담원과 연결되는 데만 20∼30분이 걸린다면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월드컵 마케팅에 나선 수많은 기업 중 오래전부터 축구를 후원했거나 국민 통합에 관심을 가진 기업은 상대적으로 소수다.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한 기업들이 ‘대표팀의 선전(善戰)을 위해 응원하자’거나 ‘통합된 힘을 보여주자’고 아무리 강조해도 소비자들은 가식적인 ‘선전(宣傳)’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다. 고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마케팅 효과는 급감한다. 진정성 없이 ‘월드컵 대목’만 겨냥한 광고는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그렇다면 축구를 후원해 오지 않은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진정성 관점에서 접근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실천해온 경영 철학이나 가치를 축구와 접목시키면 된다. 예를 들어 사회 통합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면 묵묵히 음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비수를 광고 모델로 쓸 수 있다. 사람을 중시하는 철학을 가진 기업이라면 무작정 대표팀을 응원하자는 메시지보다 ‘축구에서도 사람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물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실천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마케팅 역량이 매우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이키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나이키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란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나이키 타운’이란 이벤트 공간을 만들면서 제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다 고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만약 도전 정신을 자극하기 위해 호쾌한 덩크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했더라면 고객들의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고객들은 진정성을 보여주는 기업과 거래하면서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얻고 싶어 한다. 따라서 진정성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어렵더라도 단기적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우리 제품과 마케팅 메시지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가’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김남국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장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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