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기초실력 부족 학생, 더 가르쳐도 죄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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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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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강원도에 갔을 때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려고 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운동장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교무실에 가려는데 현관 앞에 ‘학업성취도 평가 D-31’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씁쓸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 친구는 “애들도 불쌍하고 선생님들도 불쌍하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였지만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대신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해(?)는 이 학교 교감을 만나고 풀렸다. 교감은 “부모님은 도시로 돈 벌러 나가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놀토’인데도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나와 기초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불러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서울이라면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구구단도 못 외운 채 중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평가 대비 문제풀이 수업, 강제 자율학습 등 수업 파행이 일어난 학교는 조사 대상 401곳 중 89곳이었다. 평가 대비 문제풀이 수업을 한 학교는 13.7%였고 강제 자율학습은 1.7%였다. “57%의 학교가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를 한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주장보다는 낮은 수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예상보다 수업 파행이 적다”고 말했다. 어쨌든 시험 때문에 ‘파행 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곽 교육감이 이런 학교를 찾아내 문책하겠다는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기초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공부를 더 가르치는 것이 파행 수업이 될 수는 없다. 학업성취도평가는 기초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가려내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진보 세력에서 “1000만 명을 먹여 살릴 1명을 길러내는 게 교육이 아니라 1000만 명 모두가 민주 시민으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시험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197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딩자오중(丁肇中) 씨는 “시험 1등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은 다른 사람이 이미 해결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해결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생도 많다. 이런 학생들도 떳떳한 민주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전교조 창립선언문 첫머리에 나온 ‘겨레의 교육 성업(聖業)’ 아닐까.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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