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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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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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은 전쟁과 평화를 함께 생각하기에 제격이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대조적인 사건인 6·25전쟁 60주년과 6·15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일이 들어 있는 달이었다. 게다가 천안함 폭침사건의 여진(餘震)까지 계속됐다. 지난 10년 동안 6·25는 6·15의 위세에 눌려 ‘덮고 넘어가야 할 과거사’가 될 뻔했다. 6·25전쟁 50주년이었던 2000년에는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살리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며 기념행사들을 줄줄이 축소 또는 취소했을 정도다.

반세기 넘게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많은 국민이 전쟁을 잊고 산 것이 사실이다. 휴전 중인 나라에 산다는 걸 일깨워준 것은 역설적으로 천안함 폭침 같은 북의 도발과 핵개발 및 이산가족 상봉 같은 뉴스들이었다. 그런 가운데 터진 천안함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각 세대가 전쟁에 대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와 냉전시대 안보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와 탈냉전 시대 특히 6·15 이후 성장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할 것이다.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단순하게 말하면 ‘전쟁은 싫다’는 것이다. 6·2지방선거 때 여당이 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천안함 역풍’이 바로 그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조치가 발표되면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자 부모에게 전화해서 울먹인 현역 사병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북한에 계속 퍼주면 되지 왜 전쟁을 하느냐”는 말도 들렸다.

그런 생각의 일단은 6·25전쟁 6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청계천에서 열린 설치미술 전시회장에서도 보였다. 행사 참가자들이 소감을 적어 붙여놓은 벽에는 ‘전쟁 싫어, 통일 좋아’ ‘전쟁은 NO’ ‘전쟁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전쟁은 싫어요, 우리 가족 행복하게’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이 쓴 글로 보였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10대 청소년들이 골목길에서 불량배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 요구하는 돈을 내줄 수는 있다. 경찰에 신고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보복을 당하느니 조직폭력배에게 자릿세를 내고 장사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을 비겁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고 국체를 보전해야 할 국가가 책무를 다하자면 전쟁이 두려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지 않은가.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경기도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각오로 임하지 않았던가. 한 해 30조 원 가까운 국방비로 60만 대군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6·2지방선거 때 민주당은 ‘한나라당 후보 찍으면 전쟁 난다’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구호로 재미를 봤다. 민주당은 25일 6·25전쟁 60주년 논평에서도 “대통령은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하고, 일부 보수 세력은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다”며 전쟁을 말하면 전쟁세력이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논평에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은 빠져 있었다. 한나라당도 천안함 북풍이 지방선거에 유리한 호재라고 생각한 나머지 국가안보에 구멍이 뚫린 사태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다.

로마시대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고 했다. 평화는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정치인들이 10대 청소년들의 ‘전쟁 싫어’ 수준의 안보관으로 정치를 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쟁을 좋아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건 역사의 진리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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