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大∼한민국 16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어제 새벽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한국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영동대로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거리응원 장소들은 환호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꿈이 마침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신세대 선수들과 국민이 함께 이룬 위업이다. 세계의 축구스타들이 빠짐없이 출전한 무대에서 우리 선수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원정 16강 고지를 정복하기까지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첫 출사표를 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헝가리에 0 대 9, 터키에 0 대 7의 패배를 당했다. 한국 사회는 먹을 것조차 부족하던 6·25전쟁 직후였다. 한국은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해외에서 개최된 월드컵 본선에 모두 6차례 진출했으나 번번이 16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세계 4강’에 오르긴 했지만 ‘원정 월드컵’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56년 만에 새 역사를 쓴 한국 대표팀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패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한 ‘신인종(新人種)’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속한 B조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 2004년 유럽 챔피언 그리스,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로 구성돼 16강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킥오프의 공이 하늘로 치솟자 젊은 전사들은 위축되기는커녕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당히 16강 고지에 올랐다. 스피드와 조직력을 중시하는 ‘토종 지도자’ 허정무 감독의 리더십도 돋보였다.

일찍부터 국제경기에 출전하거나 해외에서 활동한 우리 선수들의 ‘글로벌 경험’도 16강의 디딤돌이 됐다. 큰물에서 강한 선수들과 싸우면서 실력을 쌓은 것이다. 이 점에서 축구 수준은 국력과 함께 올라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경험이 축적되고 축구 실력도 높아질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축구뿐 아니라 경제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수비에 허점을 드러냈다. 어제 나이지리아전에서도 결정적 위기를 몇 차례 넘겼다. 이번 16강 진출로 2002년 이후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 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통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나가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8강 진출 여부가 걸린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열리는 26일 밤에도 우리는 목이 터져라 ‘大(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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