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경찰, 80년대로 돌아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8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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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경찰서의 고문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기소된 32명을 조사했더니 22명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맞거나 수갑을 찬 팔을 꺾이는 등 비슷한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경찰서는 사실무근이라지만 인권위가 밝힌 고문의 정황은 시간대와 장소 및 고문 방법에 있어서 대단히 구체적입니다.

특히 진정인이 폭행당했다는 3월 28일 양천경찰서 강력팀 조사현장이 담겨 있어야 할 폐쇄회로 TV 카메라가 현장을 찍을 수 없도록 돌려져 있었고 3월 9일부터 진정인이 인권위에 진정한 4월 2일까지 폐쇄회로 TV 녹화분이 없다는 것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경찰은 인권위에서 진술한 피의자 한 명은 마약을 하다 붙잡힌 전과 16범이며 체포 전에 자기들끼리 싸우다 찢어진 이마의 상처를 병원에 데려가 꿰매줬는데 '경찰에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범죄 조직 구성원이나 흉악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할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검거한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고문을 했다면 명백한 불법이고 범죄입니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 한다'고 고문 금지를 명문화해놓았습니다. 고문은 법치주의 국가와 문명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반인간적 범죄행위입니다. 아무리 악질 피의자라도 고문수사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권인숙 양 성고문사건이 도화선이 돼 결국 국민에게 항복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23년이 지난 지금 고문 의혹이 다시 제기된 것만으로도 경찰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4월 초에 의혹을 인지했다는 검찰이 두 달이 넘도록 뭘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철저한 수사로 고문 당사자들을 가려내 처벌하고 상급자들에 대한 지휘 책임도 물어 두 번 다시 고문 의혹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히 매듭을 짓기 바랍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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