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일상을 바꾸는 한 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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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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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죠 잉∼”이라는 선관위의 홍보포스터는 이번 지방선거에 제대로 참여하기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주간지 분량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를 보면 투표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만 누가 어떤 선거에 출마한 후보인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정당은 왜 그리도 많은지 후보 선택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혼란을 더하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으로 빚어진 남북간의 긴장으로 마음이 스산한데 이를 선거쟁점으로 삼는 정치판을 보기가 영 맘에 내키지 않는다. 꼭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면 내 한 표가 선거결과를 바꿀 것도 아닌데 꼭 투표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하므로 좋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선거 대신 추첨을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자는 발칙한 제안을 하는 정치학자도 있다. 기실 40%가 넘는 기초단체장이 기소되는 현실을 보면 추첨을 통한 선량한 일반시민이 오히려 부패 가능성이 낮을지 모른다. 그러나 추첨이라는 우연에 기대하기에는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너무 막중하다.

얼핏 생각하면 선거와 쇼핑이 유사해 보인다. 유권자가 후보를 고르는 일이 많은 상품 중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행위와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건은 잘못 고르면 당사자만 고생하지만 선거는 공적영역에 속하므로 후보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기권은 자칫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취득세나 재산세를 내면서 무슨 세금이 이렇게 많은지 불만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권은 정치 불만의 표시가 될 수는 있지만 개표에서는 권리의 포기일 따름이다. 민주주의를 중히 여기고 내 생활환경의 개선을 원한다면 기권이라는 게으른 생각을 바꿔야 한다.

기왕 투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현명한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정당 추천이 없는 교육감선거에서 후보들이 순위 뽑기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는 보도를 보면 이들이 유권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유권자가 그저 앞 번호의 후보를 택할 수준이라고 여긴다면 이들 중 선출된 후보는 유권자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를 경시하는 공직자는 결코 좋은 정책을 펼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여러 명의 공직자를 뽑아야 하지만 선택의 원칙과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후보자 개인의 공약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선관위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살펴보기를 권한다. 선관위는 광역 기초단체장 그리고 교육감 후보의 선거공약과 상세내용을 표준화된 형태로 정리해 놓았다. 좀 더 전문적 조언이 필요하다면 동아일보가 한국정치학회와 함께 실시한 ‘광역단체장 후보 공약검증’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공약의 장단점을 분석 평가한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후보자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후보자가 전문성을 가졌는가가 중요하지만 도덕성을 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지방자치에서 나타나는 부패 정도를 볼 때 도덕성이 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의원이 행정의 전문화 측면에서 관료를 넘어서는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선출직에게 중요한 것은 정책적 전문성보다 판단의 건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후보의 경력이 일하기 위한 자리였는지 명성을 쌓기 위한 자리였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현명한 유권자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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