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석]‘英군함 피폭’ 해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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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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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병 46명이 숨진 천안함 사건은 국제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코르푸 해협 사건을 생각하게 한다. 1946년 10월 22일 코르푸 해협을 항행 중이던 영국의 군함 2척이 이 수역에 있던 기뢰에 부딪혀 파손되고 영국의 군인 4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해역은 알바니아의 영해에 속했기 때문에 영국은 기뢰의 부설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알바니아에 항의했고 이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

유엔 안보리는 이 사건을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영국과 알바니아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영국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방적으로 회부했다. 알바니아는 자국이 사건 회부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으므로 국제사법재판소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보리 권고를 완전히 수락한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모호한 태도를 취하자 국제사법재판소는 알바니아가 합의를 했다고 인정해 재판을 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기뢰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은 알바니아의 잘못을 인정하여 영국에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했고, 결국 알바니아는 손해를 배상했다.

이 선례를 활용하는 것이 천안함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천안함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도록 권고하거나 요청하는 내용을 안보리 결의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나 천안함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북한이 반대하기 곤란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분쟁 당사국이 재판에 합의해야 재판을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으라는 권고 또는 요청이 채택되면 북한이 이를 거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안보리 권고 결의를 거부하면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추정하게 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결백하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으라는 안보리 권고를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국도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천안함 사건 증거를 검토하면서 남북한 당국의 신중한 대응을 요청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에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의 공정한 재판을 통해 천안함 사건을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 채택에는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공개적으로 북한의 천안함 공격 행위 등의 사실과 위법성을 주장하고 입증하여 북한의 손해배상과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유익한 방안이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 사실이 입증된다면 국제사법재판소는 북한이 유엔 회원국 간의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유엔 헌장과 남북한 간의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정전협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해 침략 행위를 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 입힌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배상하고 사과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명령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하지만 최종 판결이 있기 전까지 분쟁 사태의 악화를 방지하고 분쟁 당사국의 권리를 해칠 우려가 있는 어떤 조치도 억제하도록 할 수 있다. 재판이 종료된 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북한이 불이행한다면 유엔 안보리가 문제를 다시 다룰 수 있다. 국제적 제재는 더욱 엄중해질 것이다. 유엔 안보리와 사법재판소를 통해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명확히 밝히고 남북한 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

김영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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