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평중]표현의 자유 위협하는 천안함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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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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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힌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 이후에도 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사태 직후에는 피로파괴설 암초좌초설 내부폭발설 아군기뢰설에 미국 핵잠수함과의 충돌설이 악머구리 끓듯 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인 데다 정부와 군의 초동대응 미숙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전문가그룹 결론에도 ‘자작극’ 제기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기 마련이니 자칭 타칭의 전문가(?)가 출현해 기설(奇說)을 양산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정작 놀라운 현상은 철저한 국제공조를 통해 진짜 군사전문가 과학자 공동체가 확고한 객관적 물증을 제시했지만 루머가 진정되지 않는 데 있다. 초기의 설이 힘을 잃자 새 유언비어가 등장했다. 그중 압권은 ‘이명박정부 자작극설’이다. 결정적 증거인 북한산 어뢰추진모터와 조종 장치를 우리 당국이 조작했다는 것이다.

검경(檢警)은 천안함 유언비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군과 MB정부가 짜고 천안함을 폭파시켰다는 주장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사람이 입건되었다. 한국 정부의 자료 은폐 의혹을 제기한 참여정부 청와대의 전 비서관이나 해군이 고소한 신상철 합조단 위원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었다. 보수단체는 천안함 발표를 0.0001%도 믿을 수 없다는 유명 동양 철학자를 고발했다.

보수진영에서는 천안함 괴담이 병적이고 악성이어서 국가 공동체를 흔든다고 개탄한다. 일종의 이적(利敵)행위 수준이라는 것이다. 진보 쪽에서는 정부와 보수언론이 괴담으로 규정한 사항은 시민의 ‘합리적 의심’ 제기와 ‘개인의 견해’ 표명으로 보아야 한다고 맞선다. 공권력 개입으로 공안통치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논란은 당파성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는 중요성을 지닌다. 민주사회의 필수요소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는 표현의 자유가 루머 생산의 자유까지 함축하는지, 또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유언비어의 경계가 확연히 그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자유의 본원적 뜻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를 지칭한다. 표현의 자유 없는 자유의 이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자유시민이 모여 사는 민주다원사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도 운명이다. 그러나 자유가 결코 무한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도 직관적으로 자명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나의 자유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다.

문제는 이 논리를 정부가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란 무궁무진하므로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때 이 원리를 동원하곤 한다. 결국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되 ‘그것을 누릴 만한’ 성숙하고 책임 있는 시민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터이다.

진정한 자유 누릴 자격 있는가

천안함에 대한 합조단 발표는 사실과 합리성의 잣대에서 압도적 설득력을 지닌다.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사실의 힘은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전문가의 전면적 동의를 이끌어낼 정도로 강력하다. 한반도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유럽국가와 비동맹국의 맹주 인도 등 세계사회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도 막강한 사실과 합리성의 힘 덕분이다.

표현의 자유는 루머의 자유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성숙함과 책임감이 결여된 표현행위의 확산은 표현의 자유 그 자체를 위협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거역하는 유언비어가 창궐할 때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사실과 합리성이야말로 진보 보수의 차이를 뛰어넘어 깨어있는 시민과 성숙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원초적 토대이다. 폭침된 천안함은 통절히 절규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감당할 용기를 가졌는가?

윤평중 한신대 교수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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