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종석씨의 경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씨가 언론매체를 통해 ‘노무현 정부는 국방비를 연간 9% 안팎으로 증액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국방비 증가율을 3%대로 깎았다’고 비판했다. 노 정부의 국방비 증액은 따지고 보면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에 따른 치명적인 대북 억지력 상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이를 보완하는 추가비용의 성격이 짙었다. 전작권 전환은 노 정부가 먼저 제기해 미국과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 씨의 주장은 상당 부분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 실상을 호도하고 있다. 이 씨는 노 정부가 북방한계선(NLL)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2004년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 체계를 수립해 5년 동안 NLL과 휴전선에서 한 차례도 교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NLL을 둘러싼 충돌이 없었던 것은 북한이 2004년 남북장성급 회담 이후 서해를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등으로 공동관리하자고 줄기차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노 정부는 2007년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합의해줬다. 우리의 바다에 관한 권리를 일부 양보하면서 얻은 일시적 위장평화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이 씨는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의 군함들이 금강산 북쪽으로 이동했고 육로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으로 북한 군부대들이 후방에 재배치됐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후방 배치했다는 부대는 정규전에서 남한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기계화전력이다. 북한은 전방을 기습전에 강한 특수부대로 채워놓았다.

노 정부는 2004년 비무장지대에서 대북 심리전 효과가 큰 대북방송 확성기를 철거했다. 이 씨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대북심리전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던 수단을 포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씨는 북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격상시키는 논의를 중단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2004년 6월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연하면서 “앞으로 병사들을 교육할 때 북한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시민정신에 기초하면 더 강한 군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현 당시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준장)은 그 자리에서 “그렇다면 장병들에게 대적관(對敵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 피아(彼我) 구분을 해 달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2007년 10·4선언은 다음 정권에 대부분의 부담이 돌아가는 퍼주기 계약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이 일리가 있다”는 말을 거침없이 했다. 노 정부가 수립한 감상적 대북정책의 설계자 겸 전도사가 이 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대북정책을 주무른 핵심으로서 종북(從北)주의 정책이 낳은 안보불안 요소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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