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15>춤추는 상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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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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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상고마/장용규 지음·한길사

휴대전화 쓰는 아프리카 주술사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아프리카는 화석이 아니라 ‘펄펄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땅이었다. 이 대륙 또한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전통과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며 희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아프리카는 화석화된 과거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 단지 조금 다를 뿐이다. 그 ‘다름’은 선전국의 메커니즘에 의해, 자본에 의해, 백인에 의해 왜곡·과장·폄하되었을 뿐이다.”》

◇춤추는 상고마/장용규 지음·한길사

상고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 사회의 무속인이다. 단순히 점만 치는 것이 아니라 점술혼령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의 질병과 불행을 살피고 해결해주는 일종의 ‘퇴마사’다.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장인 저자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1990년대 중반 줄루족이 사는 남아공 북동쪽의 작은 마을 에구투구제니에서 1년가량 생활하며 관찰한 그들의 생활과 믿음에 관한 기록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1990년대 중반이나 지금이나 원시·원색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과 야생동물, 원시부족사회에서 원초성을 확인하려고 아프리카로 몰려든다.

그러나 저자가 가까이서 살펴본 그들의 생활과 문화는 그런 도식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나름의 문화, 풍습을 가지고 하루를 영위하는 생활인들이 그곳에 있었다. 저자가 행선지도 시간표도 없는 버스를 하루 종일 타고 찾아간 남아공 친구의 고향인 에구투구제니는 줄루족 마을이다. 1810년대 5000여 명에 불과하던 줄루족은 ‘샤카 줄루’를 중심으로 이웃 부족들을 무자비하게 정복해 불과 10여 년 만에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 아프리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족이다. 줄루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 부족이 오늘날 짐바브웨 모잠비크 탄자니아 등의 국가를 세웠다.

마을을 오랫동안 관찰한 그는 아프리카인들을 천성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낮에 노는 것은 뜨거운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농번기가 찾아오면 마을 사람들은 오전 4, 5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해가 뜨면 일손을 놓고 다시 해가 기우는 저녁에 농사일을 시작한다. 섭씨 35도로 올라가는 낮에는 품을 덜 파는 풀베기나 땔감 줍는 일, 과일 따는 일을 한다. 이것도 5분 동안 집중적으로 한 뒤 10분을 쉰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못사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은 선입견이다. 그들은 개간, 파종, 제초, 수확 시기를 정확히 알고 오차 없이 농사짓고 수확한다.

결혼을 위해서는 신부 집에 소 11마리를 보내야 하는 풍습, 연장자와 말을 할 때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 나란히 앉아 말을 하는 관습,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예절 등도 세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질병과 불행이 닥치면 그 원인을 아마들로지(조상혼령)와 움타가티(마녀)의 사이가 나빠져서라고 생각하고 상고마를 통해 이들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줄루족도 이미 서양의 기독교와 이성을 받아들였지만 붉은 머리와 치렁치렁한 목걸이로 상징되는 상고마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상고마들도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와 4륜구동 자동차를 구비하고 자신의 영적인 힘을 더 멀리 알리고 있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가 더는 원시나 원색의 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의 어느 시골마을을 다녀온 느낌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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