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2010년 한국 ‘쓸모없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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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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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 연합이 연방탈퇴를 선언하자 즉각 남부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를 취하고 이적(利敵) 행위자들을 구속했다. 상황이 시급하다며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군사대응을 결정했다. 일각에서 ‘독재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뒷날 관용의 정치인으로 존경받는 링컨이지만 국가분열을 부추기는 세력은 강력히 응징했다. ‘미합중국 수호(守護)’라는 그의 확고한 원칙과 신념이 없었다면 미국은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을지도 모른다.

로마는 포용과 개방정책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발전했다. 속주 주민에게 시민권을 줬고 속주 출신 황제도 나왔다. 그러나 로마 공동체가 지향하는 기본 가치를 인정할 때만 시민권이 부여됐다. 제2차 포에니전쟁 때 로마는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에게 연전연패하면서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결국 승리했다. 외적과 맞설 때는 일치단결해 총력전에 나선 로마와, 한니발의 승리를 질시하는 지도층의 내분에 휩싸인 카르타고의 차이가 최종적 승패를 갈랐다.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에서 ‘열린 마음’은 덕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원칙이 무너지면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은 저서 ‘CEO, 역사에게 묻다’에서 “공동체의 통합과 번영을 위한 기본 가치에 동의하지 않은 채 분열을 조장하고 번영을 해치는 집단은 개방과 포용,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외부의 적과 내통해 공동체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을 방치하는 것은 파멸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천안함의 비극’ 이후 두 달간 나타난 일부 친북(親北) 세력의 집요한 북한정권 편들기와 파괴적 분열주의는 한국이 위기를 맞았을 때 총력 대응할 국가역량이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객관적 사실은 무시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짓선동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정상적 판단력과 양식을 지닌 세계인들이 일제히 ‘북한의 폭거’(일본 아사히신문 사설)를 규탄해도 들은 척도 않았다.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숨진 2000만 명을 빼더라도 약 1000만 명의 소련 국민을 희생시켰다. 영국 좌파 지식인 웨브 부부와 버나드 쇼는 이런 스탈린 체제를 찬양했다.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강제수용소의 실체를 확인하고도 소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레닌은 서구 좌파 지식인들을 공산혁명 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했다. 우리 내부 친북세력에 대한 북한의 시각도 비슷할 것 같다. 반면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들은 ‘쓸모 있는 바보들’이 아니라 ‘쓸모없는 바보들’ 나아가 ‘위험한 바보들’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갈등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과 자유, 재산과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세력까지 끌어안고 갈 수는 없다. 과거 서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치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우리 사회의 ‘쓸모없는 바보들’을 무력화, 고립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허위의식과 기만을 낱낱이 파헤쳐 주변에 알려야 한다. 친북세력은 아니지만 막연히 동조했던 일부 국민도 이제는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함께 엄중히 물어야 한다. “당신의 자식이나 형제자매가 천안함에서 희생됐더라도 그렇게 주장하겠느냐”고.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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