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레스 에드워즈]16년 정든 서울… 언제나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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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6일 22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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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1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한 서울을 떠나 고향 뉴질랜드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6·25전쟁 당시 야전병원을 소재로 한 미국 TV드라마 ‘M*A*S*H’를 통한 단편적인 내용에 그쳤던 내가 1991년 처음 한국에 올 때 서울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 많지 않았다. 또 서울 사람들은 외국인과 어울려 일하고 생활하는 데 익숙지 않았다.

‘생수병’ 집자 “No” 했던 가게주인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기도 힘들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나는 생수를 사려고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 냉장고에서 2L 용량의 생수 6병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더니 가게 주인이 “안돼 안돼 안돼(NO! NO! NO!)”라고 외치면서 두 손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로 물을 사고 싶다고 말했지만 가게 주인은 생수를 가로채면서 “안돼(NO!)”라고만 말했다.

외국인에게는 생수도 팔지 않느냐는 생각에 불쾌감마저 들었다. 약간 화가 난 듯한 나를 보더니 가게 주인은 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는 흉내를 냈다. 그러더니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렸다. 이상한 슈퍼마켓이라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소주를 물로 착각했다. 가게 주인은 내가 소주로 양치를 하고 물처럼 마시다가 취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툴고 힘들었던 5년간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갈 때는 이 도시에 다시 오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인연인지 나의 서울 생활은 1999년에 다시 시작됐다. 불과 3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달라졌다. 외국인을 대하는 서울 사람의 표정은 밝고 친근하게 변했다. 해외 금융과 비즈니스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 글로벌 시티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방콕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가 세계 언론을 통해 도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비해 서울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 해외여행객이 많이 찾지 않는 도시였다. 다행히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서울은 세계 언론매체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도 해외에 도시를 알리는 노력을 시작하면서 CNN이나 BBC처럼 유명 언론에서 서울을 만나기가 낯설지 않게 됐다.

그래서인지 가끔 통화하는 고국의 친구도 서울로 여행 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서울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해외에 서울을 알리는 데 다소 많은 돈이야 들었겠지만 내가 사는 도시가 해외 유명 방송에서 소개되고 세계인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에게도 즐거움이었다.

더 매력적인 원더풀 시티가 돼있길

이제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레스토랑에 가면 런던 뉴욕 시드니에서 먹었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접할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생수 대신 소주를 쇼핑할 염려도 없어졌다. 물론 서울이 외국인이 여행하고 살기에는 아직까지 말이 잘 안 통하고 숙박시설이 다양하지 못하거나 자녀를 보낼 외국인학교와 아플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한 점 등 불편함도 있는데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이 맑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중단하지 말고 서울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 런던 뉴욕 시드니와 같은 원더풀 시티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11년간의 두 번째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내게 서울은 별 생각 없이 떠났던 1996년 그때와는 달리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지금은 작별을 고하지만 언젠가 다시 찾을 제2의 고향 원더풀 시티 서울이여, 아듀!

레스 에드워즈 뉴질랜드 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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