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촛불에 놀라 의료관광 포기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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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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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은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홍역을 치를 때도 두 나라는 강한 제조업이 있어 면역력이 강했다. 유럽의 재정위기도 제조업이 약한 남유럽 국가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독일과 일본 다음으로 제조업이 강하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회복된 것도 바로 제조업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독일보다 못한 점이 있다. 상품을 수출하는 제조업은 강하지만 국내에서 해외의 돈을 끌어들이는 여행 관광 의료 등 서비스 산업이 취약하다. 2007년을 기준으로 보면 독일이 한 해 360억 달러의 관광수입을 올린 데 비해 일본은 93억 달러, 한국은 58억 달러에 그쳤다.

중국 富者환자 끌어들이는 일본

서비스산업은 고용효과가 높다. 일본은 서비스업 낙후가 청년 실업난을 가중시킨다고 본다. 서비스업 중에서도 의료 건강 관광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이들 분야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500만 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집중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도 강한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의료 건강 관광 산업이 겨냥하는 곳은 아시아 지역이다. 일본 정부는 7월부터 중국인 개인 관광비자의 발급 기준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연소득 4200만 원 이상이라야 발급해주는데 이를 연소득 500만∼800만 원 이상이면 발급해줘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쉽게 일본을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비자 발급 지역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외에 내륙과 동북부까지로 확대했다.

지난날 일본은 중국인 관광객을 반기지 않았다. 일본에 와서 돈을 쓰기보다는 취업하러 온다고 봤다. 그러나 앞으로는 돈 잘 쓰는 중국 관광객이 일본에서 관광과 쇼핑을 하도록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생산과 소득을 늘리고 침체된 내수도 살려 보자는 의도다.

일본 후생성은 외국인 환자들이 검진 결과에 따라 자유롭게 체재 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의료비자를 새로 발급할 계획이다. 의료비자를 받으면 수술 후 경과를 보려고 다시 입국할 때도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된다. 외국인이 일본 병원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 인증제를 도입하고 의료 지식을 갖춘 통역인력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의료비자 제도의 신설과 서비스 개선으로 싱가포르나 한국 인도로 가는 외국인 환자를 일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일본이 의료 관광산업을 중점 육성하려는 것은 싱가포르의 성공에서 크게 자극받았다. 인구나 면적에서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되는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연간 관광수입은 86억 달러로 일본 수준에 육박한다.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연간 5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은 싱가포르 관광수입을 불려주고 있다. 일찌감치 198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 위주의 성장에 한계를 직시하고 서비스산업을 키운 싱가포르 정부의 미래지향적 정책이 들어맞은 것이다.

싱가포르 의료관광객은 年50만 명

일본과 한국은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나라다. 세계적으로 투자개방형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국가에 속한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비를 폭등시키고 건강보험제도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곳은 아마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정부는 2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에 놀라 영리병원 허용을 비롯한 의료 규제완화 대책을 서랍에 집어넣어 버렸다. 일각에서 ‘MB와 윤증현이 식코(미국의 의료현실을 고발한 영화)의 세상으로 안내한다’는 선동까지 나오자 ‘촛불’이 건강보험 지키기 시위로까지 번질까 봐 겁먹은 것이다. 정부 관료들이 촛불에 놀라 엎드린 사이에 싱가포르와 일본은 우리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 진실을 말해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없는 정부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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