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기성]융합기술 뒷받침할 법제정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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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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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업체는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다이아몬드처럼 경도가 있는 물질을 코팅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수술용 메스를 비롯해 생체이식 심장 펌프, 엔진 부품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기술이다. 이 업체는 국내외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 한국화학시험연구원과 협의하고 있다. 이 제품이 세상 빛을 보기에는 난관이 많다. 인증의 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제도로는 융합기술로 만든 이 제품에 필요한 인증을 내줄 수 없다.

기업도 제도 마련을 강력히 요구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346개 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의 41%는 융합제품을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관련법이나 기준이 없어 판매를 보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기업 4곳 중 1곳은 제품의 인허가를 받지 못하는 등 인증과 같은 제도적 기반 미흡이 산업융합 활성화를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산업융합을 따라가지 못해 획기적인 제품이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생(生)인공 간’도 그중 하나다. 간이 급격히 나빠져 생명이 위급할 경우 간 이식을 받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간 기능을 대신해 주는 장치인데 바이오 기계 전기전자 기술이 융합된 전형적인 산업융합 제품이다. 최근 어느 화장품회사 연구소가 실험용 생쥐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바이오칩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이 2013년부터 시행하는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 금지’ 조항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인증 없이는 상용화되기 어렵다.

융합은 이미 세계적인 메가트렌드이지만 우리는 아직 융합 관련 제도를 마련하지 못해 미증유의 금맥을 캐지 못했다. 융합제품에 대한 기술 인증은 매우 중요하다. 제품을 개발해도 인증이 없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는 수출을 위해서라도 융합 관련 인증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지식경제부가 추진하는 산업융합촉진법은 정부와 기업, 시험인증기관 간의 협력을 이끌어 낼 연결고리다. 융합법은 융합기술 개발을 장려하고,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규정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기반이다. 이 법은 관련 규정이 없어도 임시 인증을 통해 융합기술을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제도가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다. 인증이 있어야 융합제품이나 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는 만큼 인증의 길을 터줬다는 것은 융합산업 발전을 가로막던 장벽을 허물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7월에 발족하는 화학융합시험연구원은 융합법에 발맞춰 융합기술에 대한 시험 인증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증을 통해 융합기술의 산업화를 지원한다.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환경기술(ET) 등의 융합제품 및 기술에 대한 인증을 진행할 기반을 갖추고 대한민국 융합산업의 지원기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융합이라는 메가트렌드 앞에서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을 보장받을 수 없다. 산업융합촉진법은 융합산업의 출발점인 인증 인프라 구축을 위한 무기다. 이 때문에 융합법 제정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 한국은 개인도 기업도 개별적 역량은 뛰어나지만 협력은 잘 못한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잘못된 말이다.

우리는 하나하나를 더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훌륭한 비빔밥 문화를 이미 갖고 있다. 산업융합을 어느 나라보다 잘 해낼 역량을 갖추고 있다. 곧 제정될 융합법을 기반으로 융합 인프라를 구축해 정부와 인증기관 기업의 역량을 맛깔스럽게 비벼낸다면 세계 융합산업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이 허언(虛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조기성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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