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아름다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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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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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게임(Beautiful Game).’ 축구황제 펠레가 스스로 ‘축구’에 붙여준 이름이다. 그 아름다움은 축구의 ‘쉽고 단순함’에서 피어난다. 공 하나에 열광하고 공 하나로 세상 모두 하나 되는…. 그래서 축구는 경기 이전에 ‘언어’다. 그런 축구로 인간 존엄과 자유를 되찾은 이들이 있다. 40여 년 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체제하 남아공의 로벤 섬 교도소 안에서 마카나(Makana)축구협회를 운영한 흑인 양심수다.

반(反)아파르트헤이트를 외치다 케이프타운 해안 12km 밖 외딴섬 감옥에 갇혀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리며 스러져 가던 이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제이컵 주마 현 대통령도 거기 있었다. 지금 남아공을 ‘무지개 나라(Rainbow Nation·피부색과 인종의 차별 없이 두루 어울려 살아가는 평등의 나라)’로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그들이 어두운 감옥에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열정과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 축구였다. 소수백인의 인종차별정부를 궤멸시킨 힘. 그것 역시 축구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그 현장, 로벤 섬을 최근 다시 찾았다.

11년 전과 달라진 건 없다. 2000여 명 수감 규모의 교도소(현재 박물관), 고통의 나날이 아로새겨진 돌 캐기 작업장, 교도소 밖 스코틀랜드식 건물 몇 동…. 그런데 이것만은 달랐다. 사흘 치 페리승선권이 동이 날 만큼 늘어난 방문객인데 물론 월드컵 때문이다.

그 교도소가 새롭게 다가왔다. 여기서 힘겹게 펼쳐졌던 ‘축구’라는 ‘아름다운 게임’ 덕분이다. 그것은 통상의 축구가 아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몰아내고, 그 땅에 무지개 나라를 세운 영혼의 몸놀림이자 의지의 언어였다. 그래서 남아공 월드컵을 진정으로 즐기고자 한다면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이 펼친 ‘그들만의 리그’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마카나축구협회는 특별했다. 1965년부터 20여 년간, 아파르트헤이트 압제하 외딴섬 감옥에서, 반정부투쟁을 벌이다 체포된 죄수 간에, 국제축구연맹(FIFA) 조직과 규칙에 따라 운영됐다. 거기엔 7개 구단이 각각 세 팀을 두고 3부 리그로 토요일마다 경기를 펼쳤다.

그게 단순한 공차기였을 리 없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향한 몸부림으로 일관된 처절한 투쟁이었다. 이 잔인한 환경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게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의 투사를 일치 화합시키며, 무지개 나라의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한 ‘게임 이상의 게임’이었다.

25일간 아프리카 취재를 마치고 귀국하니 모두가 ‘남아공 월드컵 안전한 거냐’고 묻는다. 알카에다의 테러 선언, 백인우월주의 단체 대표의 죽음과 관련해 세계 언론이 쏟아낸 뉴스 때문이다. 덕분에 월드컵 관광특수도 폭삭 사그라진 눈치다. 내 답변은 궁색하다. 여행 중에 어떤 위해도 위험도 감지 못한 만큼 내가 본 남아공과 아프리카는 평온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테니.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다. 축구잔치 월드컵만 보지 말고 ‘아름다운 게임’을 잉태한 ‘남아공 축구’도 보아 달라고. 로벤 섬 교도소를 통해 축구가 세상을 소통시키는 언어임을 알게 됐다면 말이다.

1969년 결성된 마카나축구협회는 만델라가 89회 생일을 맞은 2007년 7월 19일 FIFA의 명예회원이 됐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공을 회원에서 축출했던 FIFA는 회원이 모두 국가(208개)로, 단체를 회원에 가입시킨 것은 처음이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로벤 섬에서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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