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운]해외진출 中企‘특허권 열쇠’ 챙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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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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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우량 중소기업들이 ‘특허권’ 소송에 휘말려 꿈을 접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특허 문제로 해외 진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21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국 중소기업 제품 전시회장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의 뼈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국내 우량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조만간 미국 시장 재진출 계획이 있는 그에게도 이번 전시회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김 회장이 경영하는 시계 제조업체 로만손은 1990년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당시 유리의 강성을 유지하면서 각을 내는 ‘블랙 커팅 글래스’ 기술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15달러 하던 시계가 28달러까지 가격이 올랐지만 소비자들이 매장에 줄을 설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로만손은 5년 뒤인 1995년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지 시계업체들이 ‘로만손 시계의 베젤(시계판 위의 유리를 고정시키는 테두리) 디자인이 자신들의 것과 유사하다’며 특허 침해를 주장하고 나선 것. 김 회장은 “1심에만 10만 달러 넘게 드는 소송비용이 부담스러웠다”며 “1990년대 중반 이후 급부상하던 러시아 시장에 집중할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체성분 분석기로 잘 알려진 바이오스페이스는 최근 한 미국 대학으로부터 특허권 소송을 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자체 조사 결과 미국 측 기술과 유사한 점이 적어 승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막대한 소송비용 부담 때문에 대학 측 요구에 따라 수익 일부를 떼어 주기로 합의했다. 이 회사 윤학희 미국법인장은 “유명 로펌의 경우 법률자문에 시간당 900달러까지 달라고 하더라”며 “미국 특허를 3건이나 출원하는 등 승소에는 자신 있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결국 적정선에서 타협했다”고 털어놨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외국 업체들을 경계하는 각국 현지 업체들의 특허권 시비는 잦아질 수밖에 없다. 컨설팅업체인 ABA의 제러미 매드빈 사장은 “불황일수록 특허권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라며 “한국 업체들이 이에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강소(强小) 기업들이 많이 나오려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특허권 문제에 부닥쳐 해외 진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 최근 중견기업 육성책을 내놓은 정부 당국자들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로스앤젤레스에서

김상운 산업부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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