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남홍길]꽃 속의 ‘개화시계’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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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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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마른 가지에서 느닷없이 경이로운 찬란함으로 꽃이 생겨납니다. 혹시 저 찬란한 꽃이 어디서 오는 걸까? 이렇게 물어 보셨다면 아주 예쁜 삶을 살고 계신 겁니다. 아름다운 감수성을 가진 영혼이니까요. 과학적 질문은 아니네요. 그래도 좋습니다. 과학도 감성도 세상을 인식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니까요.

조금은 과학적으로 묻습니다. 꽃의 저 경이롭도록 갑작스러운 성장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저 같은 성장을 위한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생물의 성장은, 조금은 구체적으로 꽃의 개화와 성장은 기본적으로 다른 곳으로부터 에너지와 물질을 가져와 자신의 유전자에서 내는 계획에 따라 자기 조립화 과정을 거쳐 모양과 크기와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봄날 꽃의 경이로운 성장은 줄기나 뿌리에 저장해 둔 물질과 에너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집니다. 줄기나 뿌리에 저장해 둔 그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기온이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던 가을날, 잎이 스스로 죽음을 유도하면서 자신을 분해하여 줄기나 뿌리에 보내 둔 것입니다. 그 잎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의 에너지와 공기(이산화탄소)를 버무려 만들어낸 동화작용의 결과입니다. 봄꽃의 찬란함 이상으로 가을날 단풍이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찬연한 색깔의 향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봄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연과 삶의 운행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 무릇 탄생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야. 봄날의 저 찬란한 탄생은 가을날의 찬연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아기의 탄생 또한 찬란함입니다. 그러나 찬란함에는 앞서 가신 많은 분의 진화의 잔재와 염원이 동시에 실려 있습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때맞춰 꽃이 피어납니다. 올해는 봄꽃이 많이 늦게 피네요. 어이 저 꽃들이 봄이 되면 어김없이 때에 맞춰 피어날까요? 같은 날은 아니고 조금씩 바꾸어 축제를 망칠까 라고 많은 분이 궁금해하기도 원망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내용은, 많은 분이 필요로 하는 내용은 과학자에게도 궁금하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과학은 궁금함에서 출발하니까요.

봄꽃은 대부분 봄이 오면 기온이 올라간다는 정보와 낮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꽃이 피는 시기를 조절합니다. 아 참! 생명체를 보는 새로운 시각의 하나는 생명체가 외부의 정보를 인식하고 프로세스하여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정보처리체라는 것입니다. 왜 두 가지 정보를 다 이용할까요? 이 두 가지 정보는 봄이 온다는, 혹은 계절을 인식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어느 하나만 이용할 경우 대단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낮 길이는 길어지나 기온이 너무 낮은데 꽃을 피우면 꽃이 잘 자라지 못하겠죠. 한편 잠시 날이 따뜻해진다고 봄이 아닌데 꽃이 피면 낭패를 볼 수 있겠죠?

재미있는 점은 식물이 봄이라고 인식하는 중요한 방법이 얼마나 추운 기간이 지속되었는가를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잠시의 추위가 아니라 긴 시간의 추위가 있어야만 아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구나를 인식하여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자연의 운행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네요. 무심해 보이는 식물도 참으로 정교하게 예민하게 사는구나 하고. 그리고 아 그래! 저 찬란한 봄꽃이 피기 위해서는 긴 겨울이 꼭 필요했구나 라고. 그러고 보니 머지않아 꽃이 피는 때를 조금은 조절하는 일도 가능해질 거 같네요.

남홍길 포스텍 홍덕석좌교수 시스템생명공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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