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전중환]상상보다 훨씬 기이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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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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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시절 내 소소한 행복 하나는 매주 화요일 뉴욕타임스를 가판대에서 사 읽는 일이었다. 화요일마다 12면짜리 두툼한 과학 섹션이 나왔기 때문이다. 매주 알찬 과학 기사를 한 아름씩 안겨주는 신문이 나오는 과학 문화가 몹시 부러웠다.

그런데 과학이 대다수 보통 사람에게는 어렵고 지루한 딴 나라 이야기로 치부되는 현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기자 내털리 앤지어는 입사 직후 회사 선배에게 자신이 과학 섹션을 담당하게 된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 선배가 답했다. “아, 그럼 제가 목요일마다 당신 기사를 보겠네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느 과학자는 “물론이죠. 당신이 신문을 48시간 동안 묵힌 다음에 읽는 버릇이 있다면요”라고 쏘아붙이지 그랬느냐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왜 일반 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흔히 과학자는 세계적인 중요 현안에 과학이 이미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봄이 봄 같지 않은 기후 변화, 요즘 자주 일어나는 지진, 낙태 수술 논쟁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누구나 과학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맞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그냥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이라는 앤지어의 주장에 더 동의한다. 모두 다 과학을 알아야 하는 까닭은 과학이 소녀시대의 화려한 무대보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 따분한 과학이 재미있다니 이 사람도 학교 다닐 때 어지간히 책만 팠나 보군.” 이렇게 생각하실 분을 위해 과학이 우리의 상식을 유쾌하게 깨뜨리는 장면을 살펴보자. 우리가 물을 한 컵 마실 때마다, 수백 년 전 이순신 장군의 방광을 통과했던 물 분자를 적어도 하나 이상 섭취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온 세상에 존재하는 물 컵의 수보다 물 한 컵에 들어 있는 물 분자의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바위 같은 단단한 고체는 사실 거의 완전히 텅 빈 공간이다(한 원자에서 핵이 차지하는 부피는 잠실야구장에서 파리 한 마리가 차지하는 부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백만 년 동안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당시 조상의 생존과 번식을 좌우했던 문제만 쉽고 능숙하게 처리하게끔 진화했다. 물 한 컵에 들어 있는 물 분자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체감하거나, 중성자처럼 아주 작은 입자가 바위를 향해 돌진하면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능력은 처음부터 진화하지 않았다.

요컨대, 과학은 진화가 우리의 마음에 둘러쌓은 장벽을 우리가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잡식성 영장류의 한 종이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하는 범위 따윈 결코 신경 쓰지 않는 우주의 작동 원리를 과학을 통해 엿보는 순간, 우리는 찬탄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생물학자 J B S 홀데인은 “우주 만물은 우리의 추측보다 더 기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정도보다 더 기이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정도보다 더 기이한 현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예는 이렇다. 우리 모두는 두 발 달린 물고기다. 인간의 주요한 신체 구조와 행동은 모두 수억 년 전 뭍으로 올라온 조상 물고기로부터 물려받았다. 단단한 두개골에 담긴 두뇌, 좌우 한 쌍으로 존재하는 눈 귀 콧구멍, 몸을 지탱하는 척추, 턱과 치아가 있는 입은 물고기가 처음 발명했다. 심지어 코가 입 위에 있는 것도 가오리처럼 바다 밑바닥에 붙어 살던 조상 물고기가 숨구멍을 내야 하다 보니 그렇게 배치되었다. 소녀시대와 그 극성팬이 실은 두 발 달린 물고기라는 재미있는 깨달음은 과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전중환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 진화심리학 전공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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