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정재승]한마디 ‘딸깍’ 소리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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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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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을, 프랑스에서는 ‘통학 마차’란 게 등장했다. 환경오염도 적고 비싼 기름 값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장점 때문에 100여 개 프랑스 마을에서 학생의 통학을 담당하는 마차를 탄생시킨 것이다.

프랑스 종마협회가 내놓은 보급형 통학마차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마차에 방향지시등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마차가 부활되더라도 방향지시등만은 여전히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모양이다. 흔히 깜박이라 불리는 방향지시등은 운전대를 잡는 사람에겐 매우 중요한 의사표현 수단이다. 자칫 소홀히 했다간 대형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방향지시등이 처음 발명된 것은 20세기 중반 무렵이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땐 운전자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고 1910년경부터는 손 모양을 본뜬 인형장치를 자동차 문에 붙이고 이것을 움직여 진행방향을 알렸다.

그러다가 1935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 피아트(Fiat)가 전구가 달린 방향지시등을 처음 달았는데 그때만 해도 지시등이 깜박이는 점멸식은 아니었다. 깜박거리는 방향지시등이 처음 부착된 것은 1946년 미국의 포드 자동차가 출시한 차량에서부터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방향지시등을 켜면 ‘딸깍딸깍’ 하고 들려오는 독특한 소리가 사실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과 같은 점멸식 방향지시등은 릴레이박스(Relay Box)라고 불리는 장치로 조종된다. 릴레이 박스 안에 콘덴서가 들어 있어서 전원을 연결했다가 끊었다가 하면서 방향지시등에서 소리가 난다. 다시 말해 방향지시등을 켤 때 나는 ‘딸깍딸깍’ 소리는 지시등의 전원 연결에 따른 부차적인 결과였다.

처음에는 포드사 기술자들이 이 소리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소리가 운전을 할 때 의외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이 소리를 완전히 없애버린다면 운전자가 방향을 바꾸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방향지시등을 켜고 달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음을 없애기보다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됐다.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에는 ‘듣기 좋은 방향지시등 소리’를 연구하는 음향학자까지 있다.

자동차 업계가 소리에 집착하게 된 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차 안에서 운전자나 탑승자의 감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소리가 꼽히기 때문이다. 차에서 이상하거나 불쾌한 소리가 들리면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불안하거나 짜증이 날 수 있고 이런 기분 때문에 결국 승차감이 나빠질 수 있다. 자동차 업계가 미세한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의 BMW는 자동차에서 나는 온갖 소리를 ‘작곡한다’고 말할 정도로 섬세한 소리를 찾아내기로 유명하다. 중장년층이 즐겨 타는 세단에서는 세련되고 절제된 느낌의 지시등 소리가 나도록 작곡하는가 하면 젊은 고객이 많이 찾는 경차에는 스포티하고 날렵한 소리가 장착돼 있다.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처럼 포르셰에서도 일명 ‘포르셰 사운드’라고 불리는 특유의 날렵한 소리가 있지 않은가!

함께 신경과학을 연구했던 미국인 동료가 최근 독일 자동차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자동차가 내는 소리를 듣는 동안 운전자의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뉴로마케팅 부서에서 일한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혁신은 서로 간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연결될 때 일어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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