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석민] 천안함, 그 참담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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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2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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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 수역에서 원인불명의 충격으로 선체가 두 동강 나 104명 중 46명의 승조원과 함께 침몰한 해군 2함대 소속 초계함 천안함. 그날 밤 12시쯤, 필자가 관여하는 시민단체 임원들과 다가오는 선거 및 방송계 현안을 안주 삼아 모처럼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TV에서 긴급속보가 전해졌다. ‘팟’ 하며 머릿속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절체절명의 안보비상사태 앞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근 3주가 흘렀다. 서해가 그토록 비정한 바다임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 있다. 천안함 인양에도 속도가 붙어, 함미를 수심이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선체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젠 정말 진실규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가. 그간 천안함 사태의 기초적 사실관계에 대해 온갖 가설과 억측이 난무하는 사정은 참으로 답답했다. 도대체 사태 발생 시각은 언제인가. 혼선 끝에 내려진 결론은 오후 9시 21분 58초다.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에서 천안함이 사라진 시각이다. 1초 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리히터 규모 1.5의 지진파를 감지했다. 그런데 당일 오후 9시 16분, 백령도 방공진지 경계병이 포성과 다른 큰 소음을 듣고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천안함 사태 직전에 모종의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함미에서 들릴 비통의 진혼곡

침몰 원인은 무엇인가. 내부폭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할 때 이 가능성은 일차로 배제된다. 피로파열? 함체 철판의 마모 상태는 우량했고 평소 물이 샜다는 건 결로(結露) 현상에 불과했다. 좌초? 그 경우에 생기는 찢어지는 소리가 없었다. 어뢰에 의한 버블제트(bubble jet)? 가장 유력한 가설이지만 물기둥 및 화약 냄새가 확인되지 않았고 음향탐지기(SONAR)도 아무런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야간 등화관제로 바다는 칠흑 같았다. 선수 좌우에 두 명의 견시병(見視兵)이 있었으나 그들이 주시한 건 전방이었다. 물속에서 어뢰나 기뢰가 터졌을 때 화약 냄새를 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음향탐지기가 어뢰를 탐지할 확률은 50%도 채 안 된다(김장수 의원·전 국방장관).

북이 개입한 것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작년 11월 10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던 북측 함정이 우리 측 반격에 결정적 타격을 입고 물러난 대청해전 이후, 백령도와 연평도 주변 해상의 긴장은 일촉즉발의 상태로 고조돼 왔다. 3월 초에 한미연합 독수리 군사훈련이 시작되자 북측은 “북침 항로를 잡은 전투함선”이라며 “적개심과 멸적(滅敵)의 의지로 복수의 불벼락을 들씌워 바다에 수장해 버릴 것(노동신문)”을 천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천안함 사태 발생을 전후해 3, 4척의 북한 잠수함이 기지를 이탈했고 그중 두 척을 추적하지 못했다. 북은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저 거칠고 탁하며 차디찬 물 밖으로 함체가 완전히 들어올려졌을 때 이런 의문들이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한 가지는 분명하리라.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쓴다. 인양된 함체, 특히 함미에선 처참하게 뒤엉킨 시신들이 발견될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 아빠, 남편, 친구였을 이들이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날 대한민국엔 그 어떤 진혼곡도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함이 흐를 것이다. 그 일각에선 더 이상의 인내를 거부하는 차가운 결기도 번질 것이다.

총체적 진실만이 의혹 잠재운다

천안함의 침몰, 그 참담한 미스터리의 전모는 무엇인가. 필자는 함체 인양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이 사태의 총체적 진상을 한 치의 숨김없이 국민 앞에 밝혀주길 요망한다. 군사기밀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와 ‘공개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에 현저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될 때’ 공개될 수 있다(군사기밀법 제7조). 천안함 사태의 진상에 대해 첫째 항이 적용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둘째 항이다. 하지만 이 사태와 관련해 이미 너무도 많은 파편들이 드러났다. 함체 인양 후 정부 당국이 다시금 우왕좌왕하며 사실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진실만이, 총체적 진실만이 모든 의혹과 극단주의를 잠재우고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달래며 이성적인 후속조치의 선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국가 안전보장의 가장 현저한 이익일 것이다. 그것이 또한 저 비정한 바다 위에 꽃잎처럼 떨어져 간 천안함의 수병들, 한주호 준위, 98금양호 선원들을 기리는 그 어떤 ‘영웅’ 호들갑보다도 온당한 방법일 것이다.

윤석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youns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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