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교육 對EBS 수능강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3일 03시 00분


정부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에 EBS 수능강의를 70% 연계해 출제하겠다고 밝힌 뒤 EBS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몰리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동영상 재생 속도가 느려지거나 중간에 끊어지기 일쑤다. 50분짜리 강의 파일을 내려받는 데 걸리는 시간도 사교육업체의 인터넷강의보다 많이 소요돼 수험생들의 불만이 크다. EBS는 “수강생 수요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서버 증설 방침을 밝혔다. 인터넷강의에 필요한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수능-EBS 연계 출제 방침부터 밝힌 교육과학기술부에 책임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EBS 수능강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무료인 EBS 수능강의는 경제적 부담이 가벼워 특히 지방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점을 평가하면서도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유발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발 빠른 서울의 학원가에서는 벌써 ‘EBS 정리강의’를 만들어냈다. 학원들은 ‘바쁜 수험생들이 언제 100개가 넘는 EBS 교재를 다 보고 강의를 다 듣겠느냐’며 유혹하고 있다. 심지어 “모든 수험생이 EBS 교재를 파고들 경우 여기서 나오지 않는 30%가 당락을 좌우한다”며 불안심리를 자극해 성적 상위권 수강생을 모으기도 한다.

EBS 수능강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은 정부가 ‘사교육 잡기’에 몰두한 나머지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잡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사교육비 억제 효과를 얻기 위해 수능시험 출제를 EBS 수능강의 범위 안으로 제한하려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이다.

EBS 수능강의로 사교육 수요를 일부 억제할 수 있다고 해도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EBS 수능강의나 틀어주고, 교과서 대신 EBS 교재에 매달려 교사와 교과서의 역할이 줄어든다면 앞뒤가 바뀐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무상(無償)사교육 EBS’를 부추기는 것은 공교육 흔들기나 다름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교육 수준을 높여 사교육을 줄이는 큰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EBS는 수능강의 교재의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큰돈을 챙긴다는 비판을 듣고 있으므로 교재 가격을 낮춰 수험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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