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황창규 ‘국가 CTO’의 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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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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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은 작은 규모가 아니다. 2008년 기준으로 한 해에 국내총생산(GDP)의 3.37%인 34조5000억 원을 연구개발에 쏟아 부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스웨덴(3.6%) 핀란드(3.46%) 일본(3.44%)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지난 10년간 매년 10% 이상 늘었다. 그 결과 국제특허 출원건수가 세계 4위 수준에 이르고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 수도 세계 12위로 많아졌다. 양적으로는 대단한 실적이다.

나눠주기식 예산 배분 고쳐야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논문 피인용 횟수는 세계 30위 수준이다. 인용되는 우수 논문의 수가 적다. 기술무역 적자도 30억 달러에 이른다. 자체 개발하지 못해 해외서 수입한 기술이 많은 것이다. 이제 세계 1등 기술은 사오기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세계 1등 품목도 줄어들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한국은 2000년 87개에서 2007년 53개로 줄어든 반면 중국은 698개에서 1128개로 늘어났다. 1위 품목이 많은 나라 순위도 13위에서 19위로 밀렸다. 일류 기술을 창조하지 못하면 경쟁력도 경제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정보통신부(현재는 타 부처들로 통폐합된 부처)로부터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은 국책연구기관이 수년간 개발한 기술이 해외에서 이미 개발 완료돼 특허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헛돈을 쓴 것이다. 미리 확인해 다른 연구 과제를 지원했어야 했다. 그 뒤 정부 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사전 특허 심사제도가 도입됐지만 예산 낭비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어떤 연구 과제를 골라야 하는지 전략이 부족하고 예산 배분도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연구기관마다 고루 나눠주다 보니 성과가 나지 않는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도 “깨진 독 물 붓기 식으로 아무리 해도 연구개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정부가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내놓았다. 정부 스스로 연구개발 과제의 선정과 예산 배분권을 포기하고 민간에 넘겨줬다. ‘황의 법칙’으로 반도체 신화를 만든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주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전략기획단장에 임명됐다. 민간기업의 전문경영인이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됐다. 기업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을 살려 연구개발 성과를 높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나눠주기식 예산 배분 관행을 고쳐야 한다. 굵직한 과제를 중심으로 연구책임자가 소신껏 연구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 대학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학과를 통폐합하고 구조조정 하듯이 연구소도 바뀌어야 한다. 기초연구가 소홀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실제 연구 수요를 갖고 있는 기업과 함께 개발과제를 선정할 필요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는 그동안 원자력발전 기술에 집중 투자한 덕분이다. 핵 원료 재처리 같은 분야로 역량이 분산되지 않았던 요인도 있다. 원전기술 같은 핵심기술의 발굴과 집중 투자야말로 국가 CTO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다.

핵심 원천기술 개발에 성패 달렸다

중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에서 창조한 제품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노동력에 의존하는 ‘중국 제조’에서 벗어나 신기술이 주도하는 ‘중국 창조’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보다 불과 몇 년 앞서는 기술로 경쟁력을 지켜온 우리 주력 산업에 대한 경고다.

반도체 신화의 뒤에는 ‘황의 법칙’이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6개월 내지 1년 이상 앞선 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기술과 산업의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황창규 국가 CTO는 반도체 신화를 재창조한다는 각오로 연구개발 투자의 새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국가 CTO를 두었으면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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