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령도 앞바다는 死鬪의 현장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천안함의 실종 사병 구조작업을 벌이던 해군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 소속 한주호 준위(53)가 수중 작업 중 실신해 치료를 받다 숨졌다. 한 준위는 동료들과 함께 현장의 빠른 유속(流速)과 강한 수중압력 등 최악의 조건에서 함수(艦首) 부분에 접근하기 위한 밧줄을 설치하는 사투(死鬪)를 벌이다 순직했다. 한 준위는 35년간 군 생활을 하고 전역을 2년여 앞두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다. 그의 희생정신을 높이 기린다.

실종 사병 구조에 참여한 대원들은 이처럼 생명까지 빼앗길 만큼 위험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 달 중 가장 물살이 빠른 사리(보름) 때라 구조대원들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물의 저항은 대기(大氣)보다 14배나 강하다. 해난구조대(SSU) 지휘관은 “조류 속도가 3∼4노트에 달해 마치 태풍이 부는 빌딩 위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구조대가 함수 쪽은 함장실로 통하는 출입구를 찾아 밧줄을 연결했으나 실종 사병들이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함미(艦尾) 쪽은 구멍을 뚫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잠수요원 2명이 수압을 못 이겨 실신했다가 한 준위는 사망하고 SSU 요원은 목숨을 건졌다. 구조요원들이 생명을 빼앗기는 불행한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UDT와 SSU 대원들이 작업을 벌이는 현장에는 광양함 독도함 성인봉함 속초함 등이 떠 있었다. 상공에는 해군의 치누크와 링스 헬기, 해경의 퓨마 헬기, 공군의 HH-60 헬기가 날아다녀 격전장을 방불케 했다. UDT와 SSU 대원들은 한밤중에도 탐조등을 대낮처럼 밝혀놓은 광양함 주위에서 목숨을 건 자맥질을 계속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배 위에서 한겨울 파카를 입고 있는데도 손가락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바닷물 속은 훨씬 차가울 것이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백령도 해역을 방문해 침몰 현장의 구조작업을 독려했다. 이 대통령은 모함(母艦)으로 사용하는 독도함에서 해군 장병들을 격려하며 “최전방 분단지역의 북방한계선(NLL)에 근무하는 해군 장병들은 전시(戰時)체제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병사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최전방 위험지역에서 국가를 위해 전투를 하다 희생된 병사와 같이 인정하고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 밑 선체에 갇혀있는 실종 사병들이나 구조작업 중 순직한 장병이나 모두 국가가 최고의 예우를 해야 할 호국 전사들임에 틀림없다.

천안함에 갇힌 해군 사병들의 생존 한계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포기할 수 없다. 백령도 근해에서 해군 함정에 탄 채 구조작업을 애타게 지켜보던 실종 사병들의 가족들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쳤다. 끼니를 거른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실신하거나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 가는 가족이 속출하고 있다. 구조작업을 애타게 지켜보는 국민은 실종 사병들의 기적 같은 생환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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