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아이들에게 문화적 자본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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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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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뮤직 오브 하트’는 뉴욕 할렘 가에서 가난한 흑인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뉴욕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음악 교사는 헌신적인 자세를 보이지만 흑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장난치기 일쑤이고 흑인 부모들도 ‘바이올린은 부유층의 음악’이라고 생각해 시큰둥해한다. 그러나 교사의 진심이 통하면서 이 수업은 큰 인기를 얻는다. 교사와 학생들은 결국 카네기홀까지 진출해 성황리에 음악회를 열면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돈보다 극복하기 힘든 문화 장벽

스토리는 감동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짧은 바이올린 수업이 아이들의 인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시 가난한 일상으로 돌아가 힘든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화적 자본’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가 강조했던 개념이다. 그는 가난이 대물림 되는 과정에 ‘경제적 자본’인 돈 이외에 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일찍부터 책을 읽힌다. 주말에는 박물관이나 미술전시장, 클래식 공연장에 데려간다. 방학 때에는 외국의 문화유적을 같이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혀준다. 예절이나 말씨도 몸에 익을 때까지 가르친다. 성인이 되면 외국의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보낸다. 부르디외는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문화적 안목과 식견, 세련된 매너, 외국어 능력 등을 문화적 자본으로 정의했다.

부자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문화적 자본을 부여하는 일은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 개인이 갖춘 문화적 식견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경쟁력이다. 지식정보 산업에서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문화적 흐름을 잘 읽어내는 경영자가 유리하다. 문화적 능력이 일찍 배양된 사람들은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앞서 있다.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는 문화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적 자본도, 문화적 자본도 없는 사람들은 평생 소득 낮은 직업에 종사할 확률이 높고 삶의 행복 면에서도 크게 불리하다. 부르디외의 지적처럼 빈곤층에게는 경제적 자본보다 더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 문화적 자본일 수 있다.

문화적 자본 이론은 한국에서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역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빈곤층 자녀들이 사각(死角)지대에 놓이는 현상이 심각하다. 다른 한편에서 발 빠른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문화적 자본 축적’에 나선 지 오래다. 어릴 적부터 도서관에 데려가고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 체험을 시킨다. 자녀교육에서 학술적 이론보다 몇 발자국 앞서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뛰어난 한국의 학부모들이다. 빈곤층 자녀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집에 남아 혼자 TV를 보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럴수록 여유 계층과 빈곤층의 격차는 더 커져간다.

교육복지에 발상의 전환 있어야


문화적 자본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한 배려와 투자를 통해 획득되므로 빈곤층 자녀는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수업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개인의 문화적 능력 차이가 큰 차별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할 게 확실하므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복지에서도 경제적 지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상이 도출되어야 한다. 특히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점심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면 무상급식 같은 공약은 참으로 단순하고 공허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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