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제완]풀뿌리 과학문화 키울 곳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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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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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유의 여신상과 월가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 예술의 향기가 깃든 그리니치와 소호, 카네기홀, 링컨센터 그리고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누구나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그뿐이 아니다. 뉴욕은 라틴 남미문화, 차이나타운 그리고 맨해튼 30번가 근처의 코리아타운 등 온갖 인종의 문화가 어울리는 곳이다.

뉴욕은 과학문화 면에서도 뛰어난 도시이다. 뉴욕 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원 센트럴파크의 서쪽 90번가 근방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가보면 언제나 과학전시가 열린다. 상설관으로서는 천문행성관(Planetarium)같이 아이들이 천체모형을 타볼 수 있는 대형 체험관도 갖췄다.

센트럴파크 동쪽 57번가 근처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과학관에는 실제 크기의 스핑크스를 전시했고 동서양 과학의 발달을 잘 파악하도록 만들었다.

브루클린의 과학관, 그리고 퀸스에 있는 어린이 과학관도 독특한 전시물을 간직하고 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퀸스에 있는 어린이 과학관에는 2층 크기의 귀 모형이 있어서 어린이가 귓속을 들어가 고막을 만져보거나, 소리를 듣는 기본 구조인 달팽이관에도 걸어 들어가 소리가 전달되는 과정을 즐기면서 체험하도록 돼 있다.

서울은 어떤가.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멋진 표어를 내걸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창경궁과 창덕궁이 정비되고 남산에는 국립극장이 제 모습을 갖췄으며 시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이 광화문 중심가에 들어섰다. 강남에는 예술의 전당이 생겼다. 인사동과 경복궁 길 너머에는 아틀리에와 화랑이 들어서고 홍익대 근방에는 뉴욕의 소호나 그리니치처럼 예술가가 모여드는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졌다. 강남 일대의 와인바와 아담한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은 나름대로 국제화 냄새를 풍기는 도시로 서울을 변화시켰다.

우리의 문화는 두 기둥으로 이뤄졌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문화와 과학문화이다. 두 축 중 하나인 과학문화는 어떠한가. 창경궁 끝자락 서울대병원 건너편에 있는 초라한 서울과학관 하나가 1000만 명의 인구를 상대로 하는 시내의 유일한 과학관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예산에 밀린 탓인지 뉴욕의 과학관과 같은 과학체험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대규모의 전시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계절과 세월에 따라 바뀌어야 할 테마를 갖춘 독자적인 전시회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예술의 전당에 1년 내내 고정적으로 베토벤의 교향악을 반복 연주하는 프로그램만 있고 다른 음악 연주나 다른 장르인 미술품 전시는 전혀 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전당이라 할 수 있을까. 예술의 전당만이 아니라 과학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과학문화가 꽃피는 과학의 전당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 특히 교육과학기술부는 연구비만이 아니라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과학의 꿈을 품는 데 길잡이가 되는 서울과학관을 확장하고 내실을 더 알차게 꾸며야 한다.

뉴욕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도쿄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축구 한일전에서 한 골 차로 져도 흥분하는 국민이 노벨상 과학 부문 한일전에서 13 대 0이라는 사실에는 흥분하기는 고사하고 무관심하기만 하다. 이렇게 과학은 국민 속에 파고들지 못했다. 정부는 무관심하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볼만한 것도, 배울 만한 내용도 없는데 노벨상은 고사하고 어떻게 과학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인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과학문화의 진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대적인 투자를 기대한다. 과학이 생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과학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김제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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