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광민]상용한자 2000자는 교육과정 포함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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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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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등학교 한자교육 관련 학부모 여론조사 결과’를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냈다. 이를 계기로 교육정책에 긍정적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과 한자를 같이 사용하면서 이상적인 문자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리의 간판에, 정부 고위 관리가 출연하는 방송 언어에마저 영어가 넘쳐난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한글전용 교육으로 국어교육의 효율성이 저하됐다.

훈민정음의 장점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 하나의 음을 나타내는 모아쓰기에 있다. 모아쓰기는 음소(音素)가 발음까지 나타낼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과학적인 표기 방식이다. 한자도 초성 중성 종성을 합쳐서 하나의 음을 나타내는 것은 훈민정음과 같지만 발음인 반절(反切) 한자를 따로 표기해야만 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도 지금은 반절 대신 로마자로 병음부호를 만들어 쓴다. 세종대왕 덕분에 우리는 고유어와 한자의 음을 한국어 발음에 맞게 표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은 정말 우수하지만 한글 표기 어휘와 영어 표기 어휘의 변별 기능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글로만 쓴 수많은 어휘는 앞뒤 문맥을 읽어야 그 뜻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고 앞뒤 문맥을 읽어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글의 장점이나 음운적 특성은 생각하지 않고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이고 우리 글자이니 한글만을 써야 한다”는 막연한 한글만능주의의 감상적 주장은 곤란하다.

한자어의 정확한 음을 모르는 이들은 희한(稀罕)→희안, 풍비박산(風飛雹散)→풍지박산처럼 단어를 정확히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드물 稀(희), 드물 罕(한), 바람 風(풍), 날 飛(비), 누리 雹(박), 흩을 散(산) 같은 단어를 배웠다면 ‘희한’이나 ‘풍비박산’의 한글 표기를 틀릴 리가 없다.

사회에서 한자를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은 개인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는 2000자 정도의 상용한자를 제정하여 초등학교부터 학교 과정별로 적정 수의 한자를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한자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사람조차 없어져가고 있다. 정부는 국가 장래를 위해 더 머뭇거리지 말고, 초등학교 공교육 과정부터 한문이 아닌, 한자를 철저히 가르치게 해야 한다.

박광민 한국어문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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