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폐막된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국민에게 많은 즐거움과 희망을 주었다. 특히 과거 구미 선진국의 독무대였던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 세계를 제패하면서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온 사회에 퍼지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한 자신감은 자칫하면 무모함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공한 이유를 냉철히 분석하고 앞으로 그 성공 요인을 더욱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지난주 삼성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는 ‘장기적 시각의 투자와 지원’ ‘선수들의 열정’ ‘다른 빙상 종목과의 시너지 효과’를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즉 기업 등이 비인기 종목이던 빙상에 장기간 투자와 지원을 한 것이 결실을 봤고, 강한 개성을 가진 신세대 선수들의 빙상에 대한 애정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즐길 줄 아는 의연함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우리가 강한 쇼트트랙의 기술을 스피드스케이팅에 접목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단순히 선진국 선수들이 하는 훈련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쇼트트랙 훈련을 통하여 코너링을 익히고 스케이트 날을 우리 나름대로 개선해 통상적인 ‘一자형’보다 약간 휘게 만든 것이 세계 제패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남을 따라만 가서는 안 되고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획일적인 영어강의와 교수 퇴출
이런 사실은 최근 대통령이 직접 언급함으로써 주요 국정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교육 개혁의 방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단기적 성과를 바라기보다 교육에 대한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고, 통제와 간섭보다 교육 당사자인 학생과 교사(교수)들이 열성을 가지고 개혁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해 준다. 특히 이제는 선진국을 단순히 벤치마킹하는 단계를 벗어나, 우리나라의 특수성과 현실을 감안한 ‘우리 고유의 모델’을 창출해야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선진국과 당당히 겨루고 더 나아가 그들을 능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학 발전 방안에 관한 논의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최근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대학 개혁 모델에는 영어강의 확대 내지는 영어 공용화, 그리고 교수 승진심사 강화 및 퇴출제도 도입이 포함된다. 물론 이러한 방안을 통해 국내 대학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길이 이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일본의 도쿄대는 영어 공용화는커녕 외국어강의 숫자도 많지 않지만, 매년 발표하는 이공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 수에서 미국 하버드대에 이어 부동의 세계 2위를 차지하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이다. 사실 대학에서 사용하는 언어 문제는 학생 교육의 효율성도 생각해야 하고, 더 나아가 학문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교수 정년보장 심사를 통해 많은 조교수를 퇴출하는 제도도 미국의 아이비리그 등 사립대학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지만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다. 우수한 신진 학자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분위기를 싫어해 초빙해도 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신임 교수당 수십만 달러 가까이 지급되는 정착연구비의 낭비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대표적 주립대학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는 조교수를 임용할 때 일단 정년보장을 염두에 두고, 퇴출보다는 멘터링을 통해 젊은 교수들의 능력 계발을 도와주는 데 힘을 기울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수한 학자들이 일찍부터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하여 훌륭한 성과를 내는 모델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대학 발전 모델 다양화 필요
이처럼 세계적인 대학이 되는 길은 여러 갈래인데 우리나라의 정책은 너무 획일적인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두뇌한국(BK)사업의 경우 학문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논문 위주로 평가하기 때문에 공대 교수가 산학협력에 소홀해지고, 인문사회 분야의 학자가 대중과 유리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 발전 모델이 다양해져야 한다. 자연계에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하는 것처럼 대학들도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발전 모델을 지향해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을 따라 하는 단계를 벗어나 우리 자신의 교육 개혁 모델을 개발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 세계 최고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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