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빙상이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 어제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경기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육상의 마라톤 금메달에 비견할 수 있다. 한국 빙상이 세계 강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육상의 100m 달리기에 해당하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한국 선수로서 처음 우승해 단거리 빙속(氷速) 경기의 높은 벽을 깼다면 이승훈 선수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장거리에서 정상에 등극해 새 역사를 썼다.
쇼트트랙에서는 이정수 선수가 이미 2관왕에 올라 ‘쇼트트랙 강국’임을 다시 확인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스타 김연아 선수는 어제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1위에 올라 이 부문 첫 금메달 획득의 가능성을 높였다.
선진국과 강설량이 많은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메달을 다툰 겨울올림픽에 한국은 1948년 처음 참가한 이후 줄곧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1992년 김윤만 선수가 딴 은메달이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그러나 한국 빙상은 겨울올림픽 종목 가운데 ‘블루오션’이었던 쇼트트랙 부문을 집중 육성해 정상에 올랐고 밴쿠버에서 마침내 빙상 전 분야에 걸쳐 강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동양인은 체격 조건이 불리하다는 선입견을 깬 한국 선수들의 질주에 세계인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한국 빙상의 눈부신 도약을 보면서 육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육상의 전력을 가늠해볼 기회였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은 노 메달에 그쳤다. 남자 허들 110m 경기에 출전한 이정준 선수는 한국신기록을 세우고도 예선 탈락했을 만큼 세계기록과의 수준차가 컸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과 일본이 선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더라도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 대표팀 코치로 초빙됐다가 귀국한 자메이카 출신의 리오 브라운 코치는 “한국 육상선수들은 전국체전에서만 좋은 성적을 거두면 지방자치단체의 직장 육상팀에 채용돼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표팀 차출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 육상은 세계와 경쟁하려는 의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소속 육상선수들의 정신력과 훈련의 양이 직장을 닮아 철밥통 의식에 물들어가는 것 같다.
내년 8월 대구에서 개최되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못지않은 빅 이벤트이다. 세계의 눈이 쏠린 대회에서 주최국으로서 빈약한 성적을 거둔다면 국제적 망신을 부를 우려가 있다. 한국 육상은 빙상의 성공을 자극제로 삼아 전력 강화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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