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새로운 냉전’ 자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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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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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2597억 달러에서 2008년에는 6.5배인 1조6884억 달러로 늘었다. 경제규모 순위는 세계 18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중국과 인도의 GDP는 3.6배와 2.7배로 증가했고 한국은 1.7배로 늘어났다. 미국 달러화 기준이라는 통계상의 착시(錯視)를 감안해도 2000년대 들어 러시아 경제가 얼마나 급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경제를 키운 일등공신은 에너지·자원 가격 급등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약 15년 이어진 유가 및 원자재가격 약세가 2000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가스 원유 석탄 알루미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는 두둑하게 외화를 챙겼다. 2000년부터 8년간 대통령을 지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높은 인기를 뒷받침한 것도 경제의 자신감 회복이었다.

천연자원의 유한성과 ‘인구 대국’인 중국 인도 경제의 빠른 성장세는 자원가격을 끌어올렸다. 두 나라를 합쳐 세계 인구의 37%를 넘는 용(중국)과 코끼리(인도)가 경제성장 대열에 합류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자원 쟁탈전은 치열해졌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불린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나서 자원 확보를 위한 전방위적 에너지 외교를 펼치고 있다. 두 사람이 2003년 이후 자원외교 차원에서 방문한 나라는 40개국이 넘는다. 최근 원자바오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신설했고 해외 자원기업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린다. 베네수엘라 미얀마 수단 이란 등 좌우익 독재국가나 종교적 근본주의 국가라도 ‘자원 부국(富國)’이라면 서슴없이 손을 내민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냉전이 끝난 1991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까지 이어진 ‘거친 평화’가 끝나고 ‘새로운 냉전(Der neue Kalte Krieg)’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분석한다. 강대국들이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투쟁, 협상, 공존하는 것이 신(新)냉전의 특징이다. 서방 선진국은 민간 대기업, 후발 공업국은 국영기업의 덩치를 키워 곳곳에서 자원 사냥에 한창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貧國)’인데도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해왔다. 예산 배정에서도 해외자원 개발 투자는 뒷전에 밀렸다. 세계 석유 탐사·생산기업 중 한국석유공사의 순위는 100위권에 불과하다.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자원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석유공사를 2012년까지 6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대형화 방안을 마련한 것은 다행이지만 ‘대표선수’ 하나 만들어놓지 못하고 자원전쟁에 뛰어든 우리 처지가 정말 딱하다”고 했다.

규모의 열세를 극복하려면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함께 ‘코리아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력 인력 자금력의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회간접자본(SOC)과 플랜트 건설, 정보기술(IT) 등 우리의 장점을 자원 확보와 연계하는 패키지형 자원개발 전략도 중요하다. 정치, 행정, 기업, 언론 등 국가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냉전’의 전개양상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이 격랑(激浪)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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