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1억3000만 中농민공의 귀성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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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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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1억3000만 명의 농민공이 있다. 매년 단 한 번 춘제(春節·한국의 설) 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구이동이다.”

지난해 말 네덜란드의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라스트 트레인 홈(last train home·歸途列車·귀향열차)’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이 다큐는 중국인 감독이 3년에 걸쳐 한 농민공 가족을 촬영한 것이다. 농민공은 호적과 가족을 농촌에 두고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비숙련 노동자를 뜻한다. 중국에서 이 다큐는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편과 기사 등으로 접한 내용에서 중국이 당면한 농민과 농민공 문제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주인공 40대 부부는 빼어난 경치를 지닌 쓰촨(四川) 성의 시골마을 출신. 부부는 1990년 친척에게 어린 자식들을 맡기고 수천 km 떨어진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로 향했다. 이곳 봉제공장에서 매일 15시간 재봉틀을 돌린다. 희망은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해 부모의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큰딸은 2007년 부모처럼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제목에서 보듯 다큐의 핵심 장면은 귀향길, 춘제 때의 귀성이다. 이들 부부의 고향길은 눈물겹도록 힘들다. 2007년 춘제를 앞두고 부부는 3년 만에 고향에 가기로 결정한다. 번갈아 며칠간 기차역을 오가며 기차표를 구한다. 갈 때마다 표는 이미 동났고 웃돈을 요구하는 황뉴(黃牛·암표상)들은 기승을 부렸다. 2008년 춘제 무렵 폭설로 기차가 끊겨 광저우 기차역 광장에서는 농민공 60만 명이 나흘 밤을 새우면서 표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됐다. 이 중에는 이 부부도 있었다. 꼭 1년 전 춘제 때는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부인이 실직했다. 부인은 남편을 홀로 남겨 두고 고향으로 향했다.

일주일 전부터 중국은 춘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모든 역과 터미널은 귀성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번 주 일요일 춘제를 앞두고 연인원 수십억 명이 이동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기차표 구매실명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신분증을 등록해 기차표를 한 사람당 한 장만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광저우와 선전, 둥관 등 중국의 수출기지이자 농민공들이 집중 분포된 지역에서 시범 실시 중이다. 돌아오는 표에 대한 실명제도 농민공 고향이 산재한 후난(湖南) 성과 구이저우(貴州) 성, 쓰촨 성, 충칭(重慶) 등에서 실시한다. 농민공의 귀성길을 배려하려는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농민공을 위한 전용열차를 준비했다. 수년 전 일부 지방정부가 처음 실시한 전용열차는 베이징(北京)과 랴오닝(遼寧) 성,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등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베이징만 해도 농민공 약 40만 명이 회사의 단체표 구매를 통해 전용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또 춘제 전에 농민공 월급을 지급하라고 독려하는 정책도 잇따르고 있다.

농민공에게 춘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또 중국 정부에도 농민공의 귀성은 남다른 관심의 대상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7억2000만 명)이 농민이고 중국 경제는 농촌과 농민공의 희생 위에 발전해 왔다. 중국 정부는 올해를 포함해 7년 연속 새해 첫 문건에서 농민과 농민공 문제를 언급했다. 그만큼 이 문제를 중시하지만 도농 간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 농민공의 대우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사회불안 요소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춘제에서 중국의 미래가 여전히 농민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문득 깨닫는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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