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덕근]호랑이 등에 올라탄 한국의 통상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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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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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 동안 대공황 이상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 갔던 금융위기가 새해 들어 진정 국면에 들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더블 딥을 우려하던 경제 전문가들이 이제는 경기 과열의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출구전략 시점을 놓고 논박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일원이 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국제사회의 모범국 대열에 동참했다. 더욱이 11월에는 주요 20개국(G20)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던 우리나라는 호랑이해를 맞아 열기가 한껏 고조돼 있다.

이런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올해 우리의 국제통상 환경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관계가 경제 분야를 넘어 사회 외교 군사 부문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양국 간 심화될 무역 분쟁의 유탄이 한국을 향할 위험이 크다. 미중 무역마찰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래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일례로 지난 2년간 미국이 시장보호를 위해 부과한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의 90% 이상이 중국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편 WTO에 중국이 제소한 6건의 소송 중 5건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으며 중국을 제소한 17건의 모든 분쟁 사건을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역이론 분야의 석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미국의 심각한 대(對)중국 무역불균형 문제를 들어 보호주의 조치를 주창하는 지경이니 미 행정부나 의회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역마찰이 심화되면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으로 무역제한조치가 확대되는데 미국과 중국의 양국 시장에서 최근 선전하는 한국 제품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양국 간 무역마찰 대상이 되는 산업부문의 우리 기업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美-中무역분쟁 유탄 튈 우려 커

주력 수출시장에서의 위험요소가 커지는 한편 대중국 수입 또한 조만간 급격하게 증가될 것으로 보여 산업계와 정부가 신중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로 2008년에 격감한 대중국 수입은 작년 하반기부터 원화 강세에 힘입어 급속히 회복됐다. 더욱이 무역마찰로 미국의 시장이 막히게 되면 판로를 찾기 위한 중국 상품이 국내시장으로 대거 몰려들게 된다.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방한 때 강조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본격화할 요량이면 조만간 부각될 대중국 수입 문제에 대한 국내 산업대책을 선결해야 한다.

한미 FTA의 연내 발효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한-유럽연합(EU) FTA의 조속한 발효에 대한 기대도 주춤하고 있다. 리스본 조약으로 한층 강화된 EU 의회의 영향력이 자칫 역내 산업계의 반발을 배경으로 발목을 잡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다행히 인도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됨으로써 해외시장 확보에 대한 우려가 다소간 해소됐으나 합의 수준이 높지 못해 실질적인 산업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페루 호주 뉴질랜드와 진행하는 FTA는 수출 확대를 통한 산업효과에 비해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과도하게 부각될 문제가 있어 예상외로 지연되고 있다. 결국 FTA 협상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에서는 이렇다 할 실익을 경험하지 못해 발생하는 산업계와 정치권에서의 착시현상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여지가 크다.

위기상황을 헤쳐 나갈 비결은 경제의 개방체제를 공고히 하여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균형 있게 진작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 거듭되는 FTA 협상 타결 소식에도 불구하고 2009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보고서에서 한국의 보호주의 수준이 조사대상 57개국 중 55위로 평가된 현실은 한국의 경제 환경과 규제 수준이 국제사회에 비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부하던 한국의 정보통신 시장에 아이폰 하나가 몰고 온 변화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개방이 화두가 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개방체제 탄탄히해 위기 돌파를

또 금융위기 이후 한층 강화된 정부 주도형 성장정책이 사회와 경제 전반에 과도하게 남용되는 문제는 없는지 냉정하게 점검할 때다. 출구전략을 논하기 이전에 무리한 보조금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이겨낸 많은 우리 기업은 2000년대 들어 정부보조금으로 촉발된 숱한 통상 분쟁을 겪은 경험이 있다. WTO 협정의 엄격한 규범은 이제 우리 정부가 주력하는 연구개발 지원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날을 세우는 상황이다. G20으로 발돋움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점을 명심하고 21세기에 걸맞은 정부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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