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여행 에티켓,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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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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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 귀국하는 항공기에서 겪은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휴식할 요량으로 좌석 등받이를 뉘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좌석 등받이를 세차게 발길로 걷어차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범인은 내 뒷좌석의 30대 후반 한국인 남자였다. 그는 영문을 몰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다짜고짜로 이렇게 말하며 눈을 부라렸다. “나도 좁아 죽겠는데 등받이를 뒤로 젖히면 어떡해.”

나는 주변 승객의 눈길이 내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당시 캐나다의 밴쿠버를 이륙한 이 에어캐나다 항공기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승객이 훨씬 많았다. 겪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이 미증유의 사태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그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똑같이 맞대응을 한다면…. 물론 승객은 이해할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의 폭력행위였으니. 하지만 그랬다가는 결국에는 ‘둘 다 똑같은 진상 한국인’이란 인상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분을 참고 한마디하고 돌아앉을 수밖에 없었다. “뒷좌석은 누구에게나 젖히도록 되어 있고 그게 불편하면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어진 열 시간 남짓의 비행. 세상에서 겪은 최악의 여행길이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곧 대한민국임을 느낄 때가 많다. 한류가 폭발하던 4, 5년 전. 당시 태국과 베트남을 여행한 한국인은 행복했다. 현지인들로부터 한류스타와 동일시되어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같다. 전 세계 가정에 속속들이 중계된 ‘붉은 악마’ 대한민국 응원단의 폭발적인 열정, 같은 색깔의 옷으로 광화문과 시청 거리를 온통 빨갛게 채색한 그 기막힌 응집력으로 가는 곳마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실제 여행 현장에서 만나 본 우리 여행자의 모습도 그럴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달 초 한국관광공사가 우리 국민의 글로벌 관광에티켓 수준을 직접 조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행자 스스로는 5점 만점에 4.09점을 주었다. 반면 여행객의 행동을 지척에서 지켜보아온 항공기 승무원과 여행사 직원은 3.22점밖에 주지 않았다. 내게 채점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보다 더 박했을 것이다. 채점자인 여행사 직원과 승무원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그들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일까. 우선 기내만 보자. 아직도 식사를 할 때 뒷좌석 승객을 위해 의자 등받이를 스스로 세워주는 매너 있는 승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착륙한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앉아 기다리라고 누누이 방송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제지를 받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외국의 식당에서 종이팩 소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나눠 마시는 단체여행객도 여전하다. 천재지변 혹은 기술적 문제로 항공기 이착륙이 지연돼 모든 승객이 공항에서 대기할 때도 반정부 시위하듯 떼 지어 몰려가 운송약관에도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해대며 억지를 쓰는 경우 역시 한국인뿐이다.

요즘 ‘국격(國格)’이란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글로벌사회에 어울리는 단어다. 그런데 그 국격이란 게 사실은 별거 아니다. 개개 인격의 총합이다. 그런 만큼 개개인이 인격만 제대로 갖추면 국격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그 인격이 여행 중에 좀 더 여실히 노출된다는 점만 기억하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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