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원]다름과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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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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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와 작가에게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광우병 논란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라 우리 사회를 온통 휘젓고 있다. 이 판결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몇 달 전 같은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한 서울고등법원의 민사 판결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듯 보인다. 소속 법원은 다르다지만 형사재판을 담당하였던 법관이나 민사재판을 담당하였던 법관이나 대한민국 법관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서로 다른 판결을 하였을까.

우리는 몇 년 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O J 심슨 사건을 기억한다. 심슨이 자신의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됐을 때 그가 범인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가 심슨의 것과 일치하고 전처와 사이가 나빴다는 등 정황 증거까지도 온통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피해자 가족이 제기한 민사재판에서 법원이 전처 살해 혐의를 인정하여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했다는 사실이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상반된 결론의 판결이 나온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증거에 따라 사실인정을 해야 함은 민, 형사 모두 다를 바 없지만 두 종류의 사건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증명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쪽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반면에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되는 형사소송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는 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서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지혜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물론이고 선진 각국의 형사소송법이 예외 없이 채택한 대원칙이다.

이번에 무죄를 선고한 형사사건에서도 이전의 민사 판결과 비슷하게, 방송 보도 중 세세한 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보도내용 전체의 취지에서 볼 때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합치하면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거나 다소 과장되더라도 ‘형법상의 허위’는 아니라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 취지에 따라 무죄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두 판결은 서로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다름이 허용되는 사법부가 더욱 건강한 사법부이다. 인류 역사가 가장 우수한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믿는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공존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두 개의 다른 판결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면도 있다.

다름은 틀림과 구별되어야 한다. 두 재판의 결과가 다르다고 해서 바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아직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기까지 대법관을 포함해 많게는 19명에 이르는 법관의 지혜와 경험이 동원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다. 두 판결 중 어느 하나가 틀렸다면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예상하는 사법적 문제해결 과정이다.

판결이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충분한 정보 없이 이미지에 근거하고 사건을 판단하는 법관에게 공정심을 잃게 할 우려가 있어 오히려 더욱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외국에서는 지역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사건은 다른 지역으로 관할을 바꾸기도 한다. 한 발짝만 뒤에 서면 남을 비판하는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이상원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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