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병기]디지털 컨버전스가 찾아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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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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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만들 때 목재를 가공하는 일과 페인트칠 하는 일을 따로 해야 한다든지, 앉는 기능과 눕는 기능을 가진 의자를 따로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분업적 사고이다. 분업적 사고는 물건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자 하는 인간의 경제욕에서 비롯된다. 직업이나 직능의 분화도 마찬가지다. 벌목 목공예 페인트 화학 유통 조립 등 원래 한 사람이 했던 노동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졌다.

이런 경제욕이 시장의 영역을 넘어 실생활에까지 파고들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 지금의 산업사회 모습이다. 근래 들어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융합에로의 회귀현상은 산업사회의 분업적 한계를 참지 못한 인간이 본연의 융합적인 모습을 되찾아 생산력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로이다.

한 가지 물건에서 두 가지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물건을 하나로 만들어 붙여 여러 기능을 실행하는 기능의 융합이 실용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세탁과 탈수 기능의 결합, 유무선 전화기의 결합, 볼펜과 샤프의 결합이 대표적이다. 21세기는 아날로그적인 결합에 기대지 않고도 융합적인 기능을 바로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융합적 기능은 워드 문서와 같이 다면적이다. 글씨를 굵게 하고 싶으면 굳이 굵은 연필을 사용할 필요가 없이 볼드체를 선택하면 된다. 워드 문서처럼 하나의 패키지에 모든 기능이 다 들어 있고 기능 간의 호환이 가능하다.

그래픽 영역에서 컨버전스는 2D와 3D의 공존성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광학통신기술에 의해 컨버전스의 경향은 더욱 확대 재생산된다. 통신의 융합으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나 정보가 존재하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과거 PC 시대의 정보혁명은 컴퓨터 속에 사무실, 쇼핑몰과 도서관을 집어넣어 사이버공간을 만들었지만 유비쿼터스 기술은 물리적 공간 속에 정보와 접속능력을 집어넣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컴퓨터와 연결된다.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이 내장되고 그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스마트폰은 통화기능과 무선인터넷, 카메라, MP3플레이어, 사전 기능을 융합한다.

직장에서 가정의 로봇청소기를 움직이고 아파트 창호시스템을 작동시킨다. e-Money, 쌀 씻기와 정수 기능을 결합한 전자동 밥솥을 스마트폰으로 작동시켜 언제 어디서나 밥을 지을 수 있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집이나 강의실에서 열람과 대출이 가능하고, 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헬스케어 시스템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 유비쿼터스 컨버전스 기술은 온·오프라인의 구분을 사라지게 하고 고전적인 공간의 개념마저도 없애버렸다.

일찍이 미켈란젤로는 조각이란 쓸데없는 공간을 떼어 내어 형태를 만드는 일, 곧 공간을 조정하는 작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있다 혹은 없다는 존재론적인 차원을 벗어나, 인간의 인식에 따라 활용되는 능동적인 상태, 원래 공간이란 그런 것이었다. 단지 오감이 무디어진 인간이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는 임시 변통주의와 가변적 다양성의 가치를 인간에게 제시한다. 인간은 원래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나 역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총체적인 존재였다. 어떤 이는 그리스 시대의 히포크라테스나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간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는 융합이라는 본원적 욕구를 일깨워 산업시대를 정점으로 무시되어 온 인간의 총체성을 되찾는 길목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허병기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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