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인찬]“동아방송과 함께 스러진 꿈도 보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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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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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8일 출근하자마자 대전 KBS 보도국 김점석 경제팀장(55)의 전화를 받았다. 김 팀장은 “오늘 동아일보에 실린 언론통폐합 관련 기사를 보고 당시 억울한 사연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하루 전 발표한 1980년 전두환 정권의 불법적인 언론강제통폐합에 대한 진실 규명을 상세히 보도했다.

1980년 대학 졸업반이던 김 팀장은 아나운서가 꿈이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영향력과 연봉을 자랑했던 동아방송에 입사하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9월 동아방송 입사시험에 응시해 서류와 필기, 1·2차 음성테스트를 통과하고 면접과 적성검사까지 치른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귀하도 주시하시는 바와 같이 이번에 신문·방송기관이 통폐합됨에 따라 본사는 부득이 신규채용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리는 속달 우편이었다. 김 팀장은 이 우편물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통제를 위해 1980년 11월 12일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 대표들을 보안사로 불러 회사 포기 각서를 강요해 서명을 받은 뒤 14일 언론통폐합을 발표했다. 김 팀장은 이 조치로 인해 일하고 싶었던 방송사가 갑자기 사라진 황망한 경우를 겪은 셈이다. 그는 “못 마시던 술까지 마셔가며 1년여 동안 방황했다”면서 “다행히 다른 언론사에 입사하게 됐지만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당시 오랫동안 꿈꿔온 언론사에 들어갈 기회를 잃은 정신적 충격은 너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언론통폐합 조치로 64개 언론사가 18개로 줄어들면서 46개 언론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김 팀장의 말처럼 당시 최대 영향력을 지녔던 동아방송도 권총을 찬 신군부의 협박을 견뎌낼 수 없었다. 언론사를 강제로 떠난 기자들도 최대 1636명에 이른다. 해직 언론인들은 취업이 제한돼 생계 곤란을 겪었으며 그 고통은 그들의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됐다고 진실화해위에 진술했다.

그로부터 30여 년간 국가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도외시해 왔다. 진실화해위 김준곤 상임위원은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사용된 공권력의 구체적인 모습 등을 정리했고 국가에 사과와 피해구제조치를 권고한 게 기존 조사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의 역할은 여기까지일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가 언론통폐합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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