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빵꾸똥꾸 식모’ 탈출구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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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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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똥꾸’라는 말을 방송 금지해야 하느냐를 놓고 지난해 논란이 벌어졌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못된 부잣집 딸아이가 ‘빵꾸똥꾸’라고 주로 내뱉는 대상이 그 집 식모(이 말도 그 프로에 나오는 저질 용어) 신세경이다.

상냥하되 해답없는 일자리안내

TV 코미디이고 직업엔 귀천이 없지만 젊고 똑똑한 여자가 월급 60만 원 받으며 남의집살이 하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처럼 혼자 검정고시 준비만 해선 언제 고졸 학력 따고 대학까지 마쳐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아득하다. 대졸 백수도 수두룩한 판에 무턱대고 진학만 하는 게 좋은지도 미지수다.

중졸 학력에 배운 기술도 없고, 어린 동생까지 거둬야 하는 신세경이 어디 먹고 자면서 기술을 익혀 취업할 방법이 없나 싶어 나는 서울 다산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봤다. 그랬더니 “정부부처마다 담당 분야가 달라 한꺼번에 안내해주기 어렵다. 취업알선이나 직업훈련은 여성부 콜센터로, 먹고 잘 곳은 노숙자쉼터로 전화해 물어보라”며 상냥하게 전화번호를 일러줬다.

신세경은 산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일일이 전화하고 찾아다니기도 힘든 처지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주인집 아들과 결혼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신분차이’는 있지만 첩첩산중 같은 정부 지원을 받아 자립하기보다는 외려 쉽겠다.

정부 사람들은 올해 국정운영과 정책의 우선순위가 일자리 만들기라고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부처들은 서로 질세라 새해 업무보고마다 일자리 창출을 소리 높여 복창했다. 하지만 관(官)은 평생고용과 죽을 때까지의 연금이 보장된 덕에 아직도 백성의 절박함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자리와 직업훈련, 복지체계가 공무원 편의대로 여성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지방자치단체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을 리 없다. ‘고용-훈련-복지 연계 맞춤식 원스톱 통합 서비스 구축’이라는 국정과제는 2005년부터 수도 없이 강조된 건데 여태 이 모양이다.

정부가 진정 일자리 문제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면 모든 정책과 개혁의 기준을 일자리, 그것도 더 나은 일자리가 생기는가에 맞춰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면 해결책은 각 분야에서 속속 나올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문제들도 실마리가 보이는 건 물론이다.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 허용이 대표적이다. 딴 건 몰라도 의료서비스 고용이 늘어난다는 데는 이를 거세게 반대해온 복지부도 동의한다. 최대 21만 명(한국개발연구원 추정)에서 최소 1만 명(한국보건산업진흥원 추정)의 일자리가 생기는데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밀려 덮어버리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규제두고 외치는 “일자리” 공허해


외국어고 억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외고 졸업생이 일반고교 출신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 취업도 잘하는 게 분명할진대, 외고의 숨통을 죄는 건 죄짓는 일이다. 미래일꾼을 키우는 교육정책이 경쟁을 통한 경쟁력 높이기로 가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선 엘리트군 경험이 이력서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어서 군 입대할 때 치열한 시험을 보는 판이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겁난다면 따로 사회정책을 마련하면 된다. 올해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종식 20년인 칠레가 그랬다. 중도좌파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세금 퍼주기식 포퓰리즘에 빠지기는커녕 과거 우파정부가 만든 민영연금제도조차 뒤집지 않았다. 대신 시장경제 정책으로 성장의 과실을 키워 이를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다지는 데 썼다. 20년 전 40%였던 빈곤층의 비율이 지금은 12%이고, 10%였던 대학진학 비율은 40%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대학생 취업지원을 위해 대학마다 ‘취업지원관’을 두게 한다는 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 고용지원센터 상담원들부터 공무원으로 만들어 공공부문 비대화를 부채질한 데서 한 발짝도 못 나간 발상이다. 차라리 중학교에서 진로과목을 가르치는 게 낫다. 세금 퍼부어 ‘정부 일’ 만드는 게 그렇게 훌륭했다면 공산 소련이 왜 망했겠나.

우리나라에선 실업급여 나눠주는 데 급급한 고용지원센터를 호주는 민간서비스로 바꿨더니 3만5000여 개의 고용서비스 컨설팅 자리가 생겼고, 수출상품으로 커졌다. 일자리가 민간부문에서 나오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 일이다. 돈 안 들이고 기업하기 좋게 만들어주는 탈규제 민영화가 더 많아져야 빵꾸똥꾸 신세경도 주인집 아들에게 목매달지 않고 원스톱 고용복지서비스 받아 당당하게 살 수 있다.

놀고먹는 게 내 평생소원이긴 하다. 하지만 대공황 때 지역 섬유공장이 문을 닫아 주민 대다수가 실업급여로 살게 된 오스트리아 마리엔탈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고 나는 마음을 바꿨다. 놀아도 재미가 없고, 뭘 해도 무의미한 산송장처럼 살았다는 거다. 제 밥벌이가 곧 자아실현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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